발해 스님이 일본에 전한 것은?

시가현 이시야마데라 절을 찾아서

등록 2022.10.14 17:10수정 2022.10.14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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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전 시가현 오츠시 비와코 호수 남쪽에 있는 이시야마데라(石山寺) 절을 찾았습니다. 이 절은 돌산에 있는 절이라는 이름 그대로 절 터를 포함한 절 경내 전체가 화강암 돌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747년 쇼무텐노(聖武天皇)의 측령으로 료벤(良弁) 스님이 세운 절로 역사도 깊고, 한반도 북쪽에 있었던 발해 사신이 전해준 불경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이시야마데라(石山寺) 절 입구 돌길입니다. 철에 따라 색이 바뀌는데 아직 단풍이 들기에는 이릅니다.
이시야마데라(石山寺) 절 입구 돌길입니다. 철에 따라 색이 바뀌는데 아직 단풍이 들기에는 이릅니다.박현국
 
이시야마데라 절 동쪽 아래로 세타가와 강이 흐릅니다. 세타가와 강은 비와코 호수에서 흘러 나가는 유일한 강입니다. 이 강물은 여러 강들과 모아져 오사카만으로 흘러드는 요도가와 강물과 합해집니다. 비록 높지는 않지만 이시야마데라 절에서 도도하게 흐르는 세타가와 강물은 보는 것 만으로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일찍이 한반도에서 백제가 망한 뒤 일본에 건너와 살던 백제 사람들은 통한의 나날을 보내며 본토 회복을 꿈꾸었습니다. 이 때 자신의 도움이 될 곳으로 발해를 눈여겨 보았습니다. 발해는 고구려 유민 대조영이 세운 나라입니다. 따라서 일본에 있던 백제 사람들은 발해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기 위해서 노력했고, 일본 조정을 움직여 적극 교류를 했습니다.
 
 발해에서 전해진 것으로 보이는 가구영험불정존승다라니 발문에 발해 사신 '이거정'이라는 이름이 쓰여있습니다.(KBS실험실, 발해 재발견, 2002.1.5)
발해에서 전해진 것으로 보이는 가구영험불정존승다라니 발문에 발해 사신 '이거정'이라는 이름이 쓰여있습니다.(KBS실험실, 발해 재발견, 2002.1.5)박현국

발해 사람들이 한반도 북쪽에서 해류를 타고 동해를 거쳐서 일본에 접근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여러 기록에 의하면 발해 사람들이 일본에 교역을 위해서 건너온 횟수가 80회를 넘었다고 합니다. 동해와 맞닿아있는 일본 땅에서는 지금도 온돌 흔적이 남아있는 집터가 발견되기도 합니다. 이것은 발해 사람들이 건너와 머물거나 쉬어가던 곳이라고 합니다.


발해 역시 한반도 북쪽 만주 추운 지역에서 담비를 비록한 짐승 가죽이나 임산물, 산삼들을 교역품으로 일본에 가지고 와서 면직물 등 생활 필수품을 구입하기도 했습니다. 한때 발해 사람들이 가져오는 담비 가죽이나 산삼이 고급 사치품이라고 해서 일본 조정해서 무역 금지를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이시야마데라 절은 온통 바위 투성이입니다. 시가현 오츠시에 있습니다.
이시야마데라 절은 온통 바위 투성이입니다. 시가현 오츠시에 있습니다.박현국
 
발해와 일본은 일찍이 불교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일본 스님이 발해 사신에게 중국에 있는 불경을 구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이시야마데라 절에는 861년 무렵 발해 사신 이거정(李居正)이 가져온 것으로 보이는 가구영험불정존승다라니(家具霊験仏頂尊勝陀羅尼)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가구영험불정존승다라니는 중국 당(唐)나라 무철(武徹)이 다라니와 관련해 경험한 여러 이적과 존승다라니의 영험 그리고 존승다라니경의 올바른 번역의 중요성을 썼습니다. 앞에는 무철의 다라니에 얽힌 이야기가 나옵니다. 다음은 불정존승다라니감응사가 이어지고, 그 뒤에 불정존승다라니가자구족본(佛頂尊勝陀羅尼加字具足本)이 덧붙어 있고 끝에 발문(跋文)이 있습니다.
 
 이시야마데라 절에 있는 다보탑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되었다고 합니다. 오른쪽 사진은 안에 모셔진 불상입니다. 450여 년 전 세운 탑입니다.
이시야마데라 절에 있는 다보탑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되었다고 합니다. 오른쪽 사진은 안에 모셔진 불상입니다. 450여 년 전 세운 탑입니다.박현국
 
발문에 나온 이거정은 833년 무렵 당에서 유학하고 발해로 귀국했습니다. 이거정은 제27차 방일사신단의 대사로서 무리 105명과 함께 860년 겨울에 발해를 출발하여 861년 정월에 시마네군(도근군, 島根郡)에 도착하였습니다. 일본을 찾은 까닭은 문덕천황(文德天皇)의 상에 조문하는 것이었습니다. 발해 사신들은 다라니의 효험으로 문덕천황이 모든 업장을 소멸하고 극락에 왕생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다라니를 일본에 전해 주고자 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사신이 들어오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고, 발해에서 갖고 온 신물도 받지 않았으며 다만 중대성첩만 접수하였습니다. 9세기 당시 이시야마데라 절은 대륙 교섭의 창구였습니다. 일본 사람들이 100명이 넘는 발해인들이 머물고 있던 시마네군까지 와서 경전을 수집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이시야마데라 절에 있는 이 불경은 이거정을 대사로 한 발해의 제27차 방일사신단이 861년 일본에 전해 준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시야마데라 절에서 무라사키시부(紫式部,970~1019)가 겐지모노가타리(源氏物語)를 썼다고 전해지는 방입니다.
이시야마데라 절에서 무라사키시부(紫式部,970~1019)가 겐지모노가타리(源氏物語)를 썼다고 전해지는 방입니다.박현국
 
가구영험불정존승다라니기는 불타파리(佛陀波利)가 번역한 불정존승다라니경(佛頂尊勝陀羅尼經)에 서구(序句)가 덧붙여진 인연을 설명하고, 불정존승다라니를 지니고 염송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영험공덕을 말합니다.

불정존승다라니경은 860년 이전에 발해에 전해진 것으로 보이고, 이것은 일본에 가장 먼저 전해진 불정존승다라니본입니다. 9세기 발해에서 믿어오던 불교의 유형과 일본 밀교의 유입경로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입니다. 또한 이시야마데라 절에 전해지는 이 불경은 발해의 밀교를 비롯한 불교문화와 미술 연구에서도 매우 귀중한 자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진 왼쪽 고상식으로 지어진 경장 건물과 아랫쪽 움푹 파인 바위 사이에 방석을 놓고 태아 순산을 기원한다는 곳입니다.
사진 왼쪽 고상식으로 지어진 경장 건물과 아랫쪽 움푹 파인 바위 사이에 방석을 놓고 태아 순산을 기원한다는 곳입니다.박현국
 
무라사키시키부는 일본 문학사를 대표하는 사람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그녀는 이시야먀데라 절에 머물면서 겐지모노가타리를 썼습니다. 이시야마데라 절에는 일본에 전하는 일본 고전 문학의 무라사키시키부(紫式部)의 겐지모노가타리(源氏物語)가 쓰인 곳입니다. 그래서 일본 사람들은 이 절을 문학의 절로 추앙하기도 합니다.
 
 본존 태내불과 태내불이 들어있었던 여의윤관음반가상(如意輪觀音半跏像) 불상(사진 맨 왼쪽)입니다. 태내불 크기는 21-31cm정도입니다.
본존 태내불과 태내불이 들어있었던 여의윤관음반가상(如意輪觀音半跏像) 불상(사진 맨 왼쪽)입니다. 태내불 크기는 21-31cm정도입니다.박현국
 
이 절에서는 본전에 안치한 여의윤관음반가상(如意輪觀音半跏像) 불상 몸통 안에서 작은 태내 불상 넷이 발견되었습니다. 이후 이시야마데라 절은 엄마 배 안에 있는 아기가 무사히 태어날 수 있도록 돕는 신앙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절 안 경장 건물 아래 움푹 파인 바위 돌 사이에 임산부가 앉으면 태아가 순산을 한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시야마데라 절은 교토 젊은이들의 남녀 데이트 코스로도 유명합니다. 번잡하고 아는 사람들과 부딪힐 가능성이 높은 교토 시내를 벗어나 전차를 타고 호수와 강, 절을 보면서 즐기며 여유있게 시간을 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시야마데라 절에서 내려다 보이는 세타가와 강입니다. 이 물은 굽이굽이 교토와 간사이 지역을 흘러 오사카만으로 흘러갑니다.
이시야마데라 절에서 내려다 보이는 세타가와 강입니다. 이 물은 굽이굽이 교토와 간사이 지역을 흘러 오사카만으로 흘러갑니다. 박현국
 
[가는 법] (1) JR교토역에서 비와코선 전차를 타고, 이시야마역에서 내려, 바로 이시야마데라 절 행 게이한 전차(京阪石山坂本線·石山寺行)를 타면 종점 부근에 있습니다. (2) 교토 시청앞역(京都市役所前)에서 비와코행 전차(京都市営東西線·びわ湖浜大津行)를 타고 가서 비와코하마오츠역에서 이시야마데라 행으로 갈아타고 갑니다.


[참고 누리집] - 이시야마데라 절 누리집(https://www.ishiyamadera.or.jp/)
- KBS 실험실, 발해 재발견 : 제1부 아시아네트워크 발해의 길(2002.01.05)

[참고 문헌] - 「석산사 소장 가구영험불정존승다라니기에 대한 일고찰」(임석규, 『동북아역사논총』 27, 2010)
- 「불정존승다라니경에 관한 연구」(김영덕, 『한국불교학』 25, 1999)
- 「불정존승다라니경발문」(송기호, 『역주 한국고대금석문』 3, 한국고대사회연구소, 1992)
덧붙이는 글 박현국 기자는 교토에 있는 류코쿠대학 국제학부에서 우리말과 민속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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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일본에서 생활한지 30년이 되어갑니다. 이제 서서히 일본인의 문화와 삶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한국과 일본의 문화 이해와 상호 교류를 위해 뭔가를 해보고 싶습니다. 한국의 발달되 인터넷망과 일본의 보존된 자연을 조화시켜 서로 보듬어 안을 수 있는 교류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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