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공연
다른 몸들
연극의 막이 오르고, 내 순서가 되었다. 구체적인 안무를 정하지 않고 전체적인 흐름만 연습하고 무대에 올랐다. 내 공연의 마지막에, 국카스텐 <사이>가 공연장을 가득 채웠다. 청춘을 잃어버린 상실감에, 울먹이며 듣던 노래가 몸을 타고 흘렀다.
눈을 감고 서서히 음악과 감정에 몸을 맡겼다. 헤엄치듯 요가하듯 움직이다, 긴장이 풀리자 내 안에 숨어있던 감정들이 몸을 타고 흘러나왔다. 상실감에 아파하고 무력하게 헤매던 시간을 지나, 힘겨웠던 모든 순간도 나를 이루어 가는 과정이었음을, 몸으로 이야기했다.
두 번의 공연 동안 내가 어떻게 춤을 추었는지 세세히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다만, 반짝이는 조명 아래에서 통증이 있는 몸으로 나를 표현하던 미세한 전율이 몸에 새겨졌다. 움직임과 춤의 경계가 무너지던 순간, 나를 표현하는 낯선 희열이 꿈틀거렸다.
무대에서 춤을 춘 후, 거리에서 흐르는 선율과 리듬에 몸이 반응했다. 오랫동안 아팠던 몸은 관리의 대상일 뿐이었지만, 표현할 수 있는 몸이라는 자각은 새로운 움직임을 갈망하게 했다. 제대로 추고 싶어서, 춤을 배우기 시작했다.
새로운 자각... 춤을 배우다
설렘을 안고 가벼운 걸음으로 학원으로 향했다. 그런데 척추의 연결을 느끼며 움직이는 기본 동작을 연습할 때부터, 굳어있던 근육들이 저항했다. 굽은 등을 펴니 갈비뼈가 위로 들렸다. 척추 측만으로 좌우는 비대칭이다.
자세를 둘러보던 선생님이 내 갈비뼈를 손으로 내렸다. 전신 근육 경련으로 굳어졌던 내 몸에서 아직도 가장 딱딱한 곳 중 하나가 갈비뼈 근처다. 깊이 호흡을 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춤은 무모한 도전이 아닐까.
"심각할 필요가 없어요. 너무 심각하면 몸이 바뀌지 않아요. 지금은 동작을 완벽하게 할 수가 없어요. 음악을 타고 움직이며 내 몸이 어느 공간으로 가는지만 알아도 내 몸이 활성화 되고 감각이 살아나요."
어느 날, 시퀀스 연습 중간에 선생님이 음악을 끊고 말했다. 여기저기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여러 동작을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너무 못 할까 봐 긴장하고 또 잘하고 싶어서 심각해진다.
선생님의 동작을 계속 보면서 따라하면, 내 몸은 움직일 뿐 리듬을 타지 못한다. 틀리지 않는 것에만 집중하면, 어느 순간 음악이 들리지 않는다. 춤이란 음악을 타고 움직이는 것인데 그저 동작을 완성하느라 바빠진다.
호흡을 가다듬고 팔다리에 긴장을 털어낸다. 내 몸의 중심이 음악을 타고 흐르는 느낌에 집중한다. 중간에 잠시 박자를 놓치기도 하고, 왼발과 오른발이 바뀌기도 하고, 반대 방향으로 턴을 하기도 하지만, 춤을 처음 배우면서 실수하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정확한 동작을 하는 것보다 음악을 따라 내 몸이 공간을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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