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일 서울 한남동 이슬람 모스크 계단 앞마당에서 희생자 지나트씨에 대한 약식 장례의식이 치러지는 모습.
손가영
지나트씨는 4년 전 한국에 왔다. 그는 경기도 화성시 소재 한 포장지 제조업체에서 4년을 꼬박 일했다. 그와 함께 일했던 동료 이아무개(41)씨는 "나는 회사를 먼저 나왔는데, 최근 유사한 업체를 차려 지나트에게 '같이 일하자'고 했고 2주 전 면접도 봤다"며 "일요일(30일)이 첫 출근날이었는데 오지도 않고 연락도 안 됐다. 그러던 차 지나트의 친구로부터 사고 소식을 들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참 성실하고 괜찮은 친구였다"며 "그래서 같이 일하자고도 했었는데..."라고 말을 삼켰다.
지나트씨는 원래 대학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다. 살리씨는 "그가 대학에서 컴퓨터 공학을 공부해 관련 석사 학위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집에 일이 생겨 한국으로 이주해왔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이날 장례식장에서 만난 그의 친구 5명은 "성품이 온화하고 사람들에게 친절한 좋은 사람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그는 한 친구가 수도권에서 멀리 떨어진, 인구가 적은 지역에서 일하게 되자 '거긴 할랄 푸드(이슬람법상 먹을 수 있는 음식)가 없으니 먹을거리를 보내주겠다'며 먼저 소포를 보내주기도 했다고 한다.
지나트씨는 사회 정의도 고민하던 청년이었다. 그의 SNS엔 시리아 내전의 중단을 촉구하는 'Save Syria(시리아를 구하자)' 피켓, 버마 로힝야족에 대한 학살을 중단하라는 피켓, 2018년 성폭행 후 살해당한 6살 소녀 자이나브 사건에 대해 정의를 바란다는 해시태그 등의 글이 꾸준히 발견된다.
그는 4남매 중 셋째로, 형과 누나, 남동생을 뒀다. 그의 친구 누하일씨는 "현재 모든 가족이 깊은 비통함에 빠져있다"며 "(지난 7월 결혼해) 아내와는 두 달 밖에 같이 살지 못했다"고 안타까워했다. 또 "사고 당일 아내와 다정하게 영상통화도 했었다"며 "마음이 너무 아픈 부분"이라고 말했다.
지나트씨의 시신을 실은 차량은 오후 2시20분경 이슬람 모스크를 떠나 방부처리를 위해 인천 소재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시신은 2일 오후 11시 스리랑카로 출발하는 비행기에 실려 고향으로 운구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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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영 기자입니다. 제보 young@ohmynews.com / 카카오톡 rockyrkd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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