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동구청(청장 박희조)과 한국선사문화연구원(원장 우종윤)은 골령골 2 학살지에서 약 100m에 달하는 유해 매장지를 확인했다.
심규상
골령골(대전 동구 낭월동)에서 유해를 발굴하는 대전 동구청(청장 박희조)과 (재)한국선사문화연구원(원장 우종윤, 아래 발굴단)은 골령골 2 학살지에서 약 100m에 달하는 유해 매장지를 확인했다.
골령골 내 8곳의 집단 학살지 중 2 학살지가 가장 긴 구덩이라는 증언은 초기부터 인근 마을 주민들에 의해 나왔다. 증언은 구체적이었는데 최소 폭이 2~3m, 깊이 2m라고 전했다.
지난 2002년에는 골령골 학살지 유해 매장지에 대한 구체적 기록이 더해졌다. 1950년 당시 골령골을 방문한 위닝턴 기자의 기사가 발굴된 것이다. 위닝턴 기자는 영국 일간신문 <데일리 워커>의 편집자이자 특파원으로 활동했으며, 한국전쟁이 발발 후 한국으로 들어왔고 대전 산내 학살 기사를 타전했다. 당시 기사는 암매장 구덩이에 대해 이렇게 전하고 있다.
"인근 지역 농부들이 강제로 끌려와 구덩이를 팠는데 그들로부터 나는 진실을 알 수 있었다... 6개의 구덩이는 모두 6피트(1.8m)의 깊이다. 세로는 6피트(1.8m)에서 12피트(3.6m)에 이르렀다. 구덩이의 길이는 가장 긴 것이 200야드(182m)였고 두 개가 100야드(약 82m), 가장 짧은 것이 30야드(약 27m)였다"
맨눈으로 확인한 구덩이만 6개였고 그중 가장 긴 것이 약 180m에 달했다는 위닝턴 기자의 기록이다. 이는 인근 주민 증언과도 일치한다. 2 학살지 위치 또한 주민과 위닝턴 기자의 기록이 동일하다. 지난 2020년에는 2 학살지 모습을 찍은 위닝턴 기자의 사진이 추가 발굴되기도 했다.
유해발굴단은 올 상반기까지만 1 학살지에서 약 1500구 가까운 유해를 발굴했다. 하지만 2 학살지를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대전산내희생자유족회와 유해발굴단은 지난 2017년부터 약 200m에 가까운 2 학살지를 찾아 나섰지만 확인하지 못했다.
특히 올 상반기부터는 토지 보상이 마무리돼 본격적인 발굴에 나섰는데도 2 학살지는 드러나지 않았다. 결국 발굴단은 지난 10월 중순께 2 학살지가 도로 확장공사 도중 모두 훼손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잠정 결론을 내렸다.
그러다 지난달 말 매장지 형태가 윤곽을 드러냈다. 처음에는 길이 약 20m(폭 3~3.4m)였는데 발굴단은 드러난 구덩이를 따라 조심스럽게 확장해 들어갔다. 구덩이 길이는 70m로 늘었고, 다시 100m로 늘어났다. 나머지는 100m는 아스팔트 포장도로로 뻗어 있어 모두 훼손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럼에도 이는 골령골에서 가장 긴 200m 길이 구덩이의 존재가 사실이었음을 보여준다.
장면2. 유해 구덩이 깊이 불과 5cm~20cm... 심하게 훼손
사라진 유해 행방 찾기 숙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