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숲속의 소녀들 - 신경학자가 쓴 불가사의한 질병들에 관한 이야기
한겨레출판
'체념 증후군'같은 집단 발병 현상은 왜 발생하는 것일까. 수잰 오설리번은 그의 저서 <잠자는 숲속의 소녀들>에서 이 현상들을 자세히 다룬다. 니카라과 미스키토 부족의 '그리지시크니스'라는 집단 히스테리, 쿠바 주재 미국 외교관들에게 집단 발작으로 나타난 '하바나 증후군', 현대 의료 과잉진단화로 급증하고 있는 ADHD나 자폐 등까지 폭넓게 다루고 있다.
이들 집단 발병에서 첨단 의료는 제대로 된 역할을 하고 있을까. 집단 질병은 그 지역의 환경, 의학, 심리적인 요인들이 복잡하게 뒤얽혀 형성된다. 문화적으로 다르게 발현되는 질병을 다룸에 있어 서구의 진단체계를 기계적으로 적용한다면 대응에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질병은 사회적으로 패턴화되는 행동"으로 질병에 대한 생각이나 신체 변화에 대한 태도, 병에 대한 설명 방식, 치료 방법 등은 모두 그 사회의 문화 속 학습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백인 남성을 기준으로 확립된 의료 기술에 의한 생물의학적 진단만으로는 환자가 처한 심리적이거나 사회적인 문제를 담아내지 못한다. 때문에 그 사회의 삶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민족지학적 연구 자세가 집단 질병 진단에 필요한 이유다. 민족지학적 의료의 중요성을 강조한 정신 의학자 아서 클라이먼은 그의 저서 <우리의 아픔엔 서사가 있다>에서, "사회적 맥락에서 질병과 환자의 역사를 알아내려는 진지한 고민"이 있어야만 적실한 진단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강조한다. 진단은 곧 질병의 해석이기 때문이다.
수잰 오설리번 역시 의사의 민족지학적 태도를 환자의 질병을 해석해 내기 위한 유효한 도구로 간주한다. 환자의 신체 증상은 '암호화된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난민 소녀들이 불안과 공포에 대한 SOS를 깊은 잠에 빠지는 것으로 발신한 것처럼 말이다. 집단 발병 환자들이 처한 사회 문화적 환경과 이를 반영한 심인성 진단이 도외시한다면, 이들이 보내는 신호는 번번이 기각될 것이다.
의사인 저자가 책을 마무리하며 집단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하기 위한 해법으로 제안한 것은 뜻밖에도 의료적 조치가 아니다. 그 지름길은 좋은 공동체를 만드는 데에 있었다. 집단 발병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철저히 개인이 속한 사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는 환자가 겪는 질병의 증상을 낙인찍어 삶을 위협하지 않고, 든든한 지지와 촘촘한 지원망으로 질병을 함께 극복하고자 하는 사회적 의지가 발현될 때, 집단 질병이 비로소 예방되고 치료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책을 덮고 우리 사회를 돌아보면 걱정스럽다. 우리 사회는 이방인에게 매우 냉혹하다. 또한 질병에 대한 낙인 또한 강하다. 아픈 것을 태연히 드러내기 어렵고, 질병에서 완쾌하지 못한 이는 낙오자 취급을 당하기 일쑤다. '세월호 참사'나 '이태원 참사' 등 사회 구성원의 집단 트라우마를 일으키는 충격적인 재앙에도 사회의 반응은 냉담하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지긋지긋한 레토릭을 반복하며 어서 잊고 일상으로 복귀하라 다그친다. 이렇게 회복을 재우치는 사회는 질병을 포용할 수 없다. 포용되지 못하고 내쳐지는 이들이 내릴 결정은 어딘가로의 도피밖에 없다. 이들에게 도망칠 곳이 남아있기나 하겠는가. 집단 질병은 그 사회의 참담한 실패다.
잠자는 숲속의 소녀들 - 신경학자가 쓴 불가사의한 질병들에 관한 이야기
수잰 오설리번 (지은이), 서진희 (옮긴이),
한겨레출판,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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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에서 깨어나지 않는 소녀들, 그 이유가 놀랍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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