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위령탑 비문.
윤성효
오는 26일 창원마산 가포동에서 열리는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위령탑 제막을 앞두고 있다. 한국전쟁 전후 영장도 없이 경찰과 국군이 보도연맹원 등 민간인들을 구금하거나 집단학살 했고,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1기)가 밝힌 창원지역 희생자만 1681명에 이른다.
당시 군인‧경찰은 민간인들은 산으로 끌고 가 죽이거나 바다(괭이바다)에 수장하기도 했다. 창원유족회는 창원시의 지원을 받아 무덤도 없는 억울한 원혼들의 해원을 위해 이번에 위령탑을 건립했다.
창원유족회가 위령탑 제막에 맞춰 낸 자료집에 눈에 띄는 글이 있다. 김영만 경남평화회의 상임대표가 쓴 "'골로 간다', 거기가 어디죠?"다.
'골로 간다'와 '물 알로(아래로) 보낸다'는 말은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과 관련이 있다. 골은 관(棺)을 뜻하고, '골로 가다'는 곧 '관 속으로 들어가다'거나 '죽는다'는 뜻이다.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이 벌어질 때 산골에 데려가서 죽였기에 '골로 간다'는 말로 쓰였다는 것이다.
'물 알로 보낸다'는 말을 두고 김 대표는 글에서 "전통 농악놀이에 보면 '잡귀잡신 물알로'라는 말이 나온다. '물 알로 보내다'는 말은 곧 '수장시킨다'는 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1950년 초, 한국 전쟁이 한창일 때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이후 학교에서나 동네 골목에서 동무들과 어울려 놀다 보면 별것 아닌 일로 종종 다투는 일이 생겼다"라며 "그때마다 너나 할 것 없이 첫마디가 '야! 니 골로 가고 싶나?'라는 말이었다"고 했다.
그는 "시비를 걸면 상대는 '어라! 니가 진짜로 골로 가고 싶나?'라고 받아치며 싸웠다. 뜻도 모르고 주고받는 아이들의 이 말싸움은 어른들의 언행을 그대로 보고 배운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비록 어린 나이에도 그 말이 죽음을 뜻하는 말이라는 정도는 짐작할 수 있어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며 "하지만 어른들에게 '골이 어디 있어요?'라고 묻지 못했다. 철이 들고 나서야 이 말이 군경이 저지른 민간인 학살을 뜻하는 은어였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정말 화가 치밀고 어처구니가 없었다"고 부연했다.
김 대표는 "부모님의 친구나 집안의 친인척들이 모이면 가장 많이 하시던 이야기가 보도연맹이었다"라면서 "아버지의 직장 동료, 어머니의 여학교 동창, 친척 아주머니의 남편, 북면 아재의 큰아들 등이 보도연맹에 끌려가 죽었다고 했다"라고 밝혔다.
이어 "숨죽여 어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우리에게 밖에 나가 이런 이야기 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괭이바다 이야기도 그때 들었다"라며 "어린 생각에 보도연맹이 도대체 어디 있는지는 몰라도 경찰서나 헌병대보다 무서운 곳이구나 싶었다. 그 근처에는 절대로 가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옛 마산상고(현 용마고)에 다니며 3‧15의거, 4‧11민중항쟁, 4‧19혁명를 겪은 김 대표는 "이승만이 물러나고 대통령 선거를 다시 하면서 집에서 가까운 무학초등학교는 선거유세장이 됐다. 윤보선, 장면, 박순천 등 당시 대한민국의 유명한 정치인 수십 명을 그곳에서 봤다"면서 "그때 이승만 독재의 실상, 한강 다리 폭파 사건, 보도연맹, 거창 양민학살, 인간 백정 '백두산 호랑이' 김종원과 같은 인물과 놀라운 사건들을 알게 됐다"고 밝혔다.
1966년 해병 청룡부대로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그는 "총탄과 포탄이 쏟아지고 피가 튀는 전장에서 착한 군인도 있을 수 없다. 베트남 참전은 평생 뒤돌아보고 싶지 않은 기억을 남겼다. 이후 반전 평화운동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된 이유"라고 설명했다.
1990년대 말 그가 대표로 있었던 열린사회희망연대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 목소리를 냈다. 이를 언급한 김 대표는 "2000년에 들어서 전국 단위의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과 명예 회복을 위한 범국민위원회'가 출범했다"고 술회했다. 김 대표는 당시 범국민위 공동대표를 맡았다.
2005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기본법'의 국회 통과와 전국유족회 발족을 두고는 "최근 법원에서 보도연맹 희생자들에 대한 무죄 선고가 있었다"며 "부디 그분들이 이런 과정을 통해 조금이라도 위로받을 수 있기를 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