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첨성대점심식사 장소로 선택된 첨성대 주변
유은경
올해는 코로나19로 움츠러들었던 행사들이 다시금 하나둘 시작됐다. 학교에서도 공개수업이나 체험학습 같은 것들이 정상적으로 운영됐다. 담임을 맡은 5학년 가을 체험학습 목적지는 경북 경주다.
1학기와 달리 경주까지 이동반경을 넓히고 온전한 현장체험학습을 계획했다. 경주박물관, 첨성대, 대릉원, 안압지 주변을 염두에 두고 현장체험학습 사전답사를 떠났다. 답사를 갔을 때 다른 학교에서 이미 현장체험학습을 와 있던 터라 경주는 평일임에도 북적였다.
며칠 후 우리 모습이라 생각하니 선생님들과 학생들의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같은 학년 선생님과 시간에 따른 동선을 계획하고 아이들과 점심 먹을 장소, 휴식할 장소를 미리 정해 뒀다. 평소에 그냥 지나쳤던 매표소의 입장료, 주차장, 화장실 같은 것들도 꼼꼼히 기록하고 촬영해 두었다.
1학기에도 아이들과 현장체험학습을 다녀왔지만 오전에 일정을 끝내고 학교급식을 먹는 반쪽짜리 현장체험학습이었다. 지난해까지는 칸막이 없이 마스크를 벗고 함께 식사한다는 것에 거부감이 있었고 간식도 챙겨 오지 못했다. 현장체험학습이 취소되거나 축소되어 이루어진 게 3년 차이다. 이번 체험학습에는 준비물로 도시락, 돗자리, 간식을 챙기라고 말해줄 수 있었다.
교사로 일하는 나는 같은 학년 선생님들과 의논해 점심으로 도시락을 먹기로 했다. 주문한 도시락을 아침에 찾아가는 일이 내 몫이다. 도시락을 먹고 오후에 귀교하는 체험학습이 기대되기는 아이들처럼 나도 마찬가지였다.
버스를 타고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경주 국립박물관이다. 우리는 역사관과 월지관을 중심으로 신라문화를 체험했다. 신라역사관에서는 구석기시대부터 집단을 이루고 차츰 국가를 건설한 천년왕국 신라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고, 월지관에서는 통일신라 문화재를 중심으로 신라 왕실과 귀족의 화려한 생활상을 엿볼 수 있었다. 박물관의 교육적 의의는 높았지만 다른 학교 학생들과 관광객들로 북적여 아쉬움이 남은 장소였다.
그다음 행선지는 첨성대다. 이곳 잔디밭에 돗자리를 펴고 점심을 먹었다.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모여 준비해온 도시락과 간식을 먹고, 잠시 여유 시간을 가졌다. 아이들은 모두 돗자리를 준비해 왔지만 정작 우리 선생님들은 돗자리가 없어 당황한 순간이 있었다.
다행히 아이들이 가져온 돗자리가 남아 맨바닥에 앉아 점심을 먹는 일은 피할 수 있었다. 아이들 옆에서 선생님들과 도시락 먹는 일을 3년 만에 겪고 보니 일상의 회복이 점차 진행되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야외에서 먹는 식사는 무엇을 먹건 웬만하면 다 맛있지만 그날은 특히 더 그랬다.
식사 후 첨성대를 둘러보고 대릉원으로 향했다. 우리 반은 대릉원에서 줄지어 걸으며 신라시대 고분 유적을 관람했다. 아이들은 특히 고분 내부를 볼 수 있는 천마총을 흥미 있어했고, 오늘을 기념하기 위해 사진도 한 컷 남겼다.
대릉원이 마지막 코스였기에 버스에 타기 전 아이들이 화장실에 갈 수 있도록 했다. 옆 반이 출발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휴대전화 진동이 느껴졌다. "선생님 저희 선생님 안 보여요. 어디 계세요?" 우리 반 아이가 나를 찾는 전화였다.
순간 머리가 아득해지고 뉴스에서 보던 일이 내게도 생긴 것 같아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아이에게 지금 있는 위치를 설명해 달라고 했더니 우리가 버스 탔던 곳이라고 했다. 선생님이 가겠다는 말을 전하고 서둘러 매표소 부근으로 갔다. 두리번거리며 많은 인파 속에서 아이들을 찾았다. 저 멀리서 우리 반 아이가 뛰어오며 말했다.
"선생님 보고 싶었어요." 그 뒤로 3명의 아이들이 줄줄이 뛰어왔다. 갑자기 사라진 제자들 때문에 놀라고 돌발적인 상황에 화가 날듯도 했지만 작은 에피소드로 마무리되어 안도했다. 또 내게 의지하고 애틋한 표현을 해주는 제자들이 귀엽기까지 했다. 그렇게 반별로 버스를 타고 학교로 돌아왔다. 평온할 것 같던 현장체험학습 끝에 생각지도 못한 반전이 있었지만 학교로 돌아와 보니 다시금 편안한 가을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