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 플랫폼 VR CHAT의 한 월드 내부 모습이다. 2층에는 헌팅이 목적인 클럽이, 3층에는 헌팅에 성공한 이들이 성관계를 가질 수 있는 침실이 있다.
백채원
2층에는 클럽을 연상하게 하는 조명과 무대가, 3층에는 침실이 여럿 있었다. 2층에서 헌팅에 성공하면 성관계를 위해 3층의 룸으로 향하는 구조다. 서로를 만지며 수위 높은 대화를 일삼는 그들의 목소리가 공간을 가득 메웠다.
이용자들의 말에 따르면, 이 맵에 접속하는 이용자의 80~90%는 남성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여성 아바타에서는 남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물론 가상공간의 특성상 아바타의 성별은 현실의 성별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러나 문제는 특정 성별을 '성적 대상화'한다는 점이다.
실제 성별이 남성인 사람들이 자신의 아바타를 반라의 여성으로 설정해 여성 아바타 간의 성관계를 묘사하고, 이를 통해 성적 욕구를 해소한다. 심지어 이들은 여성 아바타에 부착할 성인 기구를 커스터마이징해 현금으로 거래하기도 한다.
더 큰 문제는 연령 제한이 없다는 점이다. 미성년자도 쉽게 접속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Only VR(온리 VR)', 즉 VR 전용인 이곳은 기기만 착용하면 시공간을 불문하고 입장할 수 있는 글로벌 유흥업소다. 타인의 신체를 허락 없이 만지고, 성행위를 관음하거나 나체를 촬영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 이곳은 보통의 가상공간과 분명 다르다.
윤리적 제도뿐 아니라 기술적 대응도 구축돼야
이에 대해 이지영 서울디지털재단 선임은 지난 11월 30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메타버스가 새로운 디지털 사회로 자리매김하려면 윤리 가이드라인, 윤리 리터러시 프로그램 등의 제도 마련과 윤리 의식 강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영국의 비영리 자선 단체인 South West Grid for Learning(SWGfL)에서는 유아층에도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을 제공하고, 캐나다의 브리티시 컬럼비아주에서는 연령⋅나이⋅성별의 제약 없이 모두가 리터러시를 통해 소통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고 있다.
이 선임은 "윤리적 제도뿐 아니라 플랫폼 자체의 기술적인 대응 방안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서울디지털재단의 <메타버스 이슈 및 트렌드 리포트>에 따르면 플랫폼에서 자체적으로 마련하는 기술적 예방책은 효과적인 대응 방안이다.
예시로 게임사 QuiVR에서 개발한 '퍼스널 버블'(성추행과 같은 부적절한 행위를 하는 상대방에게 게임상에서 튕겨내 버리는 기능)과 메타버스 Meta Horizon World에서 개발한 '퍼스널 바운더리'(성희롱이나 괴롭힘을 방지하기 위한 아바타 간 일정 거리 두기 기능)이 있다. 이러한 대책은 이용자의 판단에 따라 문제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기술이라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이와 같은 조치의 일환으로 제페토를 운영하는 네이버제트는 국제인터넷핫라인협회 '인호프'(INHOPE)와 지난 11월 1일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인호프는 아동청소년 보호에 앞장서고 있는 국제네트워크 기관이다. 이들은 파트너십 체결을 통해 모니터링 기술 고도화(인공지능 기반 음란물 검출 등), 신고 핫라인 구축 등 온라인 아동 성착취물 근절을 위해 협력한다는 계획이다.
능동적인 '사이버 감찰대' 필요
메타버스 성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도덕성이 결여된 행동을 지적하고 제지하는 이용자 문화가 요구된다. 한 이용자가 로블록스에서 성희롱을 당할 때 다른 이용자가 이를 만류했던 것처럼, 작은 행동 하나가 큰 불씨를 막을 수 있다. '사이버 감찰대' 역시 디지털 성범죄를 막기 위한 방안으로 제시될 수 있다.
결국 가상 공간에서도 현장을 통제하고 보호할 수 있는 '제3자의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다만 빅브라더의 역할이 아닌 같은 플랫폼 이용자로서 건강한 메타버스 생태계를 구축하는 '관찰자'가 돼야 한다. 취재진이 평범한 메타버스 이용자 중 한 명으로 접속한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윤리적 토대가 마련된다면 메타버스는 범죄가 난무하는 '밀실'이 아닌 오롯이 시공간의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광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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