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한번, 6개월 동안 진행된 글쓰기 수업
추미전
숙현님은 '글쓰기 수업'이 아니라 '글자 쓰기' 수업인 줄 알고 수업 신청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난데없이 엽서 한 장을 두고 '보이는 대로 묘사하기'도 하고, '미운 사람들에 대해 글 써보기' 같은 수업을 하니 당황스러웠다고 한다. 몸도 불편하고 마음도 불편한데도 숙현님은 열심히 수업을 따라왔다. 수업 시간에 함께 읽은 좋은 글을 공책에 옮겨 쓰기도 하고, 주제에 대한 글쓰기도 열심히 했다.
수업이 마무리로 접어들던 지난 11월 말, 단체 카톡방에 글이 하나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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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책을 샀습니다."
숙현님이 서점엘 가서 정호승의 산문집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를 구입했다고 한다. 수업 시간에 몇 차례 함께 읽었던 정호승의 글이 인상적이어서 책을 사고 싶어서 난생처음 서점엘 갔다는 것이다.
나는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글이나 책은 자신들의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살던 사람들이 이제 글을 자신의 영역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말이니, 이만하면 글쓰기 수업은 성공이지 않은가 하는 생각에.
20대 초반부터 70대 초반까지, 지체 장애부터 뇌성마비, 파킨슨병, 지적 장애까지 나이도 장애도 제각각인 수강생 들과 함께 6개월 간의 글쓰기 여정을 함께 했다. 그중 몇몇은 진짜 글쓰기에 관심이 있어 수업을 신청했지만 상당수는 '캘리그래피'같은 '글자 쓰기' 수업인 줄 알고 '글쓰기' 수업을 신청했다고 한다.
처음 '글자 쓰기'가 아닌 '글쓰기 수업'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그들은 매우 당황했다. 맞춤법도 제대로 모를 뿐더러 글 자체도 지렁이 기어가는 수준인데 어떻게 글을 쓰겠느냐는 것이 그들의 깊은 고민이었다. 처음에는 펜을 움직이는 것에 엄두를 내지 못했다.
나는 까막눈 할머니들이 한글을 겨우 깨쳐 써낸, 맞춤법 틀린 시들이 얼마나 감동적인지 보여 주었다. 그리고 맞춤법이나 글씨체는 글을 담는 그릇일 뿐 중요한 건 안에 담기는 내용물이라는 설명을 했다.
"내가 살아온 이야기는 책 두 권을 써도 모자라요."
17년 동안 파킨슨병과 싸워 왔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올해는 대장암 진단까지 받은 교철님의 이야기다. 철자법이며 글씨체에 대한 두려움을 덜어낸 그들은 오랫동안 들여다보지 않았던 자신의 마음속 깊은 우물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부러 감춰 두었던, 잊고 싶었던 기억들을 하나씩 꺼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몇 줄로 끝났던 글들이 점점 길어졌다. 그들이 써낸 글 속에는 장애인으로 살아온 그들의 맵고, 시고, 짠 삶의 이야기가 가득했다.
'나는 미운 사람들에 대해 쓰고 싶어요. 미운 사람이 너무 많아요. 100명쯤 돼요"라던, 정국님(BTS를 좋아해서 필명을 정국으로 정했다)은 초등학교 시절, 중학교 시절 자신을 왕따하고 무시하던 친구들과 선생님의 이름을 정확히 기억해서 글로 썼다. 몇 편의 미운 사람의 글을 쓰던 어느 날, 정국님은 "이제는 미운 사람 안 쓸래요. 사랑 이야기를 쓸래요" 했다. 그 뒤부터 미운 사람 이야기는 더 이상 쓰지 않고 사랑에 대한 글을 많이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