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광개토태왕 담덕' 작가 엄광용.
최방식
석박사에 현지답사, 땀으로 쓴 역사소설
틈틈이 만주와 백두산, 그리고 중앙아시아 실크로드 여행을 다녔다. 석사 뒤 대학원 교수가 박사과정(입학금 외 3년 전액 장학금)을 권해 공부를 더 할 수 있었다. 한국문명교류연구소 정수일 교수 도움으로 중앙아시아 문명교류사에도 빠져들었다. '실크로드사전' 편집에 참여했다.
'비문'(광개토대왕비) 뿐인 정사 기록과 몇 줄 안 되는 삼국유사(중국 시각에서 저술) 사료에서 10권(현재 4권까지 출시, 8권까지 저술 마침)에 가까운 대서사를 만드는 데는 20여 년이 걸렸다. 저작에 몰입하려고 4년 전엔 고향(산북면) 여주에 집필실을 구해 들어왔다. 늘 술자리에 불러대는 문학인들을 피해보려는 속셈도 없잖았다.
소설 담덕의 작가 메시지는 '홍익인간'이라고 했다. 이웃 족속을 정복하고도 그들을 억압하거나 차별하지 않는 통치철학을 가진 평화의 대왕 이야기는 그렇게 탄생했다. 동북아 열강에 둘러싸인 한국. 미래지향의 외교란 무엇인지 역사소설을 통해 들려주고 싶다고 했다.
"소설 속, 중국황제가 고구려 사신 더러 '작은 나라가 어떻게 왕권을 잘 유지하느냐'고 묻고, 사신(석정)이 '홍익인간 정신이 몸에 배어 이웃 나라를 적이 아닌 우군으로 만들어'라 답하죠. 중국 왕조들은 2백년을 넘기지 못하는데, 고구려부터 조선까지 왕조마다 5백년을 넘기잖아요. 이웃(나라)을 괴롭히지 않는 '덕'을 가져서 그렇다고 봐요."
또 하나 '땅'이 아닌 '경제' 영토를 확장하라는 21세기형 화두를 던진다. 담덕의 노마드 정신을 배우자는 것.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 강가에 즐비한 한국의 대기업 광고판을 예로 들었다. 땅을 뺏는 게 아니라 기업이 진출해 상품을 파는 게 경제영토를 넓히는 21세기 광개토대왕정신이라는 것이다.
소설 담덕의 풍부한 이야기는 20여년 공부와 자료수집, 그리고 소설적 상상력이 밑바탕이라고 했다. 실크로드(유라시아 문화교역로) 공부가 큰 도움이 됐다. 문화가 앞서고, 거래(장사)가 이어지며, 외교가 뒤 따르는 담덕의 스토리는 그렇게 나왔다.
"우즈벡에 가보니 주몽이나 대장금을 우리보다 더 잘 알아요. 이유가 궁금했는데, 자기들 삶과 유사해서 그렇다고 해요. 신화부터 춤(봉산탈출 사자춤)이나 악기 등이 서역에서 초원로 등을 통해 고구려와 한반도로 전해졌으니 문화적 동질성을 가진 건 당연하죠."
담덕 역사적 기록이 거의 없는 것에 대해, 작가는 신라와 당나라 연합으로 고구려가 무너진 것, 중국이 고구려를 자국 역사로 편입하려는 노력(최근의 동북공정 같이, 고구려 역사를 남기지 않는 등), 그리고 일제강점기 일본이 역사기록을 탈취하고 왜곡한 탓이라고 했다.
작가가 된 계기는 고교 2학년 때 국어교사의 칭찬이었다. 시가 무엇인지 수업 때 역설했는데 귀가 쫑긋했다고. 자신의 습작 시를 고쳐줘 '빛이 번쩍'한 경험을 잊지 못하고 있다. 하숙집(여주인 교사)에 책이 많아 늘 끼고 산 것도 한 몫 했다. 하지만 아버지 사업이 망해 대학은 포기한 상태였다.
"고교 졸업 뒤 영등포의 한 공장에 다니다 그만두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죠. 삼수(대입) 친구들이 예비고사에 앞서 모교에 가서 체력장을 받는데 같이 가자고 해 따라갔어요. 그 애들이 자꾸 권해 재미로 원서를 쓰고 체력장을 받다, 결국 대학시험을 준비하게 됐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