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층에서 본 공연장3층에서 공연이 끝날 때 본 화면
김성희
공연장을 나오면서 무대와 가까이 있는 앞자리를 쳐다보았다. 티켓팅이 시작되고 1분 만에 매진된 공연에 티켓을 구한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었지만, 3층 꼭대기 자리라 노래하는 가수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던 게 내내 아쉬웠다. 다음에는 앞자리에서 공연을 보고 싶다는 새로운 목표가 마음속에 몽글몽글 차올랐다.
집에 돌아와서 매일 그날의 공연 영상을 찾아보고, 다시 예전 공연 영상들을 돌려 보면서 하루하루 보냈다. 같은 노래를 듣고 또 들으니, 하루는 퇴근하던 남편이 "아, 그걸 또 듣고 있냐, 정말 또라이 같구만~" 하고 농담처럼 진심인 듯 말했다. 그때 '아, 이게 덕질이란 건가?' 하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아이돌 1세대, HOT와 젝스키스 중 누구를 좋아하느냐에 따라 친구 무리가 갈리던 시절에 십 대를 보냈고, 영화가 좋아 극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때에도 영화 자체가 좋았을 뿐, 누군가의 팬이 되어 본 적 없다. 그런 내가 덕질이라니.
얼마 전, 큰아이 출산 후 조리원에서 만나 14년 동안 육아를 함께 한 동기들과 서로의 안부를 묻다가 이승윤의 공연에 갔던 이야기를 했다. 그랬더니 한 언니가, "그럼 현빈은 이제 안녕 한 거야?" 한다. 또 다른 언니는 "송중기는? 너 송중기 좋아가지고 얼굴 새겨진 맥주캔 집에 전시해 놓고 그랬잖아~" 한다. "아, 내가 그랬나? 하하" 답을 해 놓고 보니, 마치 과거 남자친구 떠올리듯 그때 그 시간들이 떠올랐다.
배우 현빈은, 첫째 아이를 낳은 그 이듬해 봄인 2011년 개봉한 영화 <만추>의 주인공이었다. 상대역인 탕웨이를 보고,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하고 말하는 장면에서 마치 그 말이 나한테 하는 말 같았다. 출산 예정일보다 한 달이나 조산해 아이는 미숙아 치료를 받고, 회사는 후임을 구할 시간도 없이 빈 자리가 생겼다.
처음 엄마가 되어 아이 울음소리에도 허둥지둥, 기저귀를 가는 어설픈 내 손길, 밤에 우는 아이를 두고 자고 싶은 마음, 또 그 마음을 탓하는 나. 모두 내 탓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모든 게 내 탓이 아니라고 해 주는 것만 같았다.
2016년 드라마 <태양의 후예>를 보는데, 배우 송중기가 "영화 보러 가요, 나랑" 하던 그 눈빛에 심장이 막 두근거렸다. (그 말도 물론 나한테 하는 말이 아니지만) 마치 '사람어른'이 내게 말을 거는 것 같았다.
공룡을 좋아하던 다섯 살 큰아이와 티라노사우르스가 와아악~, 파키케팔로사우르스가 우우웅~, 같은 공룡말만 온종일 하다가, '영화'라는 어른들의 언어를 들으니 그럴 수밖에. 두근거리는 심장이, '엄마' 역할만 하고 있던 내게 마치 '나' 여기 있다고 하는 것 같았달까.
'엄마'이기만 했던 내가 달라지는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