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새벽 7시, 서울시 강동구 강동경희대병원 장례식장에서 고 임보라 목사의 발인이 진행됐다.
김성욱
"오늘도 이렇게 많이 오셨습니다. 이 장면이 마치 도르가가 죽었을 때를 연상시킵니다. 도르가가 죽었을 때 떼 지어 몰려왔던 사람들이 누구였습니까. 그 당시 약자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과부들이었습니다. 과부들은 도르가가 살아있었을 때 나누어준 사랑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사람은 죽었을 때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더 제대로 알게 됩니다."
7일 새벽 6시 30분, 서울 강동구 강동경희대병원 장례식장. 고 임보라 목사의 빈소를 백 명이 넘는 시민들이 가득 채웠다. 앉을 자리가 없어 일부 시민들은 신발장 앞에 서서 고인을 향한 마지막 추모 예배를 올렸다. 임 목사의 발인식이었다. 장례식장 복도엔 성소수자 단체, 인권 단체, 동물 보호 단체, 강정마을 단체, 장애인 단체, 교회와 불교 등 종교단체, 노동조합 등으로부터 온 조화들이 줄을 이었다.
성소수자와 여성, 성폭력 피해자, 비정규직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와 함께 싸워온 임 목사는 지난 4일 별세했다. 향년 55세였다. 임 목사는 1993년 강남 향린교회 전도사부터 목회 활동을 시작, '차별없는 세상을 위한 기독교연대' 공동대표를 맡아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을 이끄는 등 기존의 보수 개신교와 달리 성소수자 차별 철폐에 앞장섰다. 이로 인해 임 목사는 지난 2018년, 예장합동·고신·합신 등 개신교계 대형 교단으로부터 이단으로 몰렸다.
"아픔과 고통이 있는 곳에 늘 함께하던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