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태도 소작쟁의 기념탑암태도는 일제강점기하에서 지주들과 일본인들에 대한 소작쟁의가 이루어진 대표적인 섬이다.
정윤섭
점점 현대화 되어가고 있는 암태면 소재지의 암태면사무소 쪽으로 가다보면 암태도 소작쟁의기념탑이 서 있다. 기념탑을 중심으로 암태도 소작인 항쟁을 기리는 기념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암태도 사람들의 힘겨운 지난날의 삶의 흔적을 보여주는 기념탑이다.
암태도는 신안군의 여러 섬들처럼 소금을 생산하는 염전이 많지만 간척으로 인해 생긴 농토도 많아 농업의 비중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소작쟁의 운동은 이 땅에서 살아남기 위한 소작인들의 투쟁의 흔적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암태도는 일제강점기하에 지주들과 일인들에 대한 소작쟁의 운동의 본고장으로 알려져 있다. 서태석으로 대표되는 열정적인 청년들에 의해 농촌계몽운동과 애국독립 운동의 농민항쟁사가 현장에서 살아 숨쉬고 있는 섬이라 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하에서 어렵게 농토를 갖게 된 섬 주민들은 대부분 가난한 소작농들이었다. 지주들과 일제의 가혹한 소작료 수취로 인해 암태도 농민들은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에 청년 서태석 등은 1923년 8월 암태소작인회를 조직하여 항쟁하였다.
암태도 소작쟁의 운동은 섬 농민들의 강고한 단결력과 지속적인 투쟁으로 전국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1924년 4월 6일자의 동아일보 기사가 이를 잘 보여준다. 당시 다른 소작쟁의 운동에 큰 힘을 불어넣어 준 대표적인 소작쟁의였다.
암태도 소작쟁의는 소설가 송기숙 선생에 의해 <암태도>라는 제목으로 소설화되어 1979년 창작과비평사에 연재되기도 하였다. 약 1년간 지속된 암태도 소작쟁의 운동은 자은도, 비금도, 도초도 등 인근 여러 섬에서 소작쟁의를 일으키게 하는 계기가 되었고 이 같은 농민들의 항쟁으로 인해 당시 7할이 넘는 소작료를 4할까지 내리게 하였다.
암태도 송곡 매향비와 우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