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동료의 축의금 액수로 우리가 내린 결론은 5만 원이다.
최은경
축의금 액수에 고려되어야 할 사항은 생각보다 많았다. 결혼식에 참석을 할 것인지, 동행자를 데려갈 것인지, 밥을 먹을 것인지, 예식장에서 제공하는 식대는 얼마인지 등등.
내 돈으로 축의금을 내면서 이렇게까지 고민해야 할 게 많단 말인가. 예전에는 축의금 내고 결혼식에 참석해서 사진 찍고 밥을 먹는 것이 '결혼의 정석'처럼 거리낄 것이 없었는데 정말 세상이 이렇게 복잡해진 건가 싶어 마음이 영 혼란스럽다.
나는 40대 미혼의 여성이다. 나의 결혼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부모님께는 죄송하지만, 이번 생에 나의 축의금을 거둬들이는 일은 일어날 것 같지 않다. 그 말인즉슨 지난 20여 년간 받지도 못할 축의금을 부어댔고, 밑이 빠진 독에 물을 붓듯이 앞으로도 축의금을 내야한다는 뜻이다.
20대에는 '우리 인연 포에버'를 철석같이 믿으며 결혼한다는 연락을 받으면 서로 낯가리는 어색한 사이라도 축의금을 냈다. 축하하는 마음과 더불어 '언젠가 나도 돌려받겠지' 싶었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다.
일단 돌려받을 일이 상당히 묘연해졌다. 큐피트의 실수로 화살이 내 심장을 관통해 내일 당장 결혼식을 올린다 해도 연락이 끊겨 돌려받지 못할 축의금을 모으면 나의 집이 0.5평 더 넓어질 수도 있었다는 결론에 도달하자, 축의금을 보내야 하는 관계와 축하하는 마음을 듬뿍 담은 메시지만으로 괜찮은 관계를 판가름하는 냉정함을 가지게 되었다.
결혼 문자를 받고 '엥? 이걸 왜 나한테?' 싶으면 이미 게임 끝이다. 그런 연락에는 거두절미하고 행복을 기원하는 문자를 정성스레 보내면 된다. 하지만 인생에는 언제나 예외가 있는 법. 오래전 연락이 끊어진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 문자로 '퉁' 치는 건 아니다. 이미 끊어진 인연이라 하더라도 결혼한다는 문자가 당황스러운 동시에 한편으로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면 이미 나의 냉정함은 KO패다.
기억도 흐릿해진 과거의 인연이지만 '나에게 결혼 소식을 알리고 싶었다'는 그 뻔한 문자가 반가웠다는 건, 정신없이 살아가는 중에도 나를 칼로 도려내듯 지워내지 않은 것이 고맙다는 뜻이다. 나도 살아가다 문득문득 그들의 안부가 궁금할 만큼 추억이 아름답게 남아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마음이 들 땐 '5만 원짜리 헛짓거리'라는 주변의 만류에도 흔쾌히 축의금을 선물한다.
물론 '이 축의금이 도화선이 되어 우리 인연이 화려하게 부활하지 않을까' 꿈꾸던 실낱같은 희망은 언제나 산산이 부서졌지만, 그렇다고 원망하는 마음이 들지는 않았다. 뭐 그런 게 인생이겠거니. 이미 끊어진 인연에게 보내는 나의 축의금은, 지난날 함께 했던 시간에 대한 그리움의 표현이자 내가 성의를 다해 보내는 마지막 작별인사 같은 거였다.
축의금 5만 원에 손절될 사이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