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지에서 직송된 딸기
김혜원
인공의 단맛을 극도로 싫어하는 나이기에 딸기가 내뿜는 붉은 단맛이 너무 신선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단맛이 입에서 다른 장기로 전해지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잠자고 있던 기억 하나가 봄 아지랑이처럼 아스라이 눈앞에 펼쳐지는 게 아닌가.
거기엔 딸기를 먹기 위해 친구들과 짧은 여행을 떠났던 대학생 시절의 어수룩한 내가 있었다. 시외버스를 타고 덜컹거리는 길을 한참 달려서야 닿게 되는 도시 인근의 딸기밭 입구, 스무 살의 내가 따가운 봄 햇살도 아랑곳 하지 않은 채 기대에 찬 얼굴로 서 있었다.
그 시절, 딸기는 참 귀한 과일이었다. 지금처럼 하우스재배가 용이하지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설령 재배를 한다 해도 대량생산이 어려워서 대부분 노지 딸기였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딸기를 사 먹을 수 있는 집은 상대적으로 경제적여유가 있는 집들로 치부되곤 했었다.
그래서 대학생이 되면 같은 과 동기들이나 동아리 친구들이 모여 딸기밭으로 딸기를 먹으러 가는 것이 큰 연례행사였다. 계절의 흐름도 지금과는 무척 달라 딸기를 먹으려면 4월을 지나 대학축제가 열리던 5월쯤을 기약해야 했는데, 딸기 여행을 위해 미리 비용도 비축을 해 놓아야만 했다.
지금처럼 돈만 있으면, 시장이나 마트에서 마음껏 사 먹을 수 있는 과일이 아니었단 얘기다. 그래서 뭐랄까, 딸기밭을 직접 찾아가 싱싱한 딸기를 먹는 일은 대학생 정도나 돼야 누릴 수 있는 호사였던 것이다. 이런 얘길 아이에게 한다면 다음과 같은 반응이 돌아올지도 모르겠다.
"엄마, 아무리 딸기가 맛있다 해도 그렇게까지 해서 딸기를 꼭 먹어야 했어?"
그래, 그렇게까지 해서 먹어야 했었다. 4월에서 5월 사이 딱 한 철이 아니면 딸기를 맛볼 수 없었기에...... 딸기가 가진 봄의 맛, 달콤하면서도 감각적으로 산도가 살아 있는 그 맛은 그때가 아니면 만날 수 없었기에 말이다. 그런데 2월에 딸기라니! 그것도 한 자리에서 다 못 먹을 만큼 많은 양이라니! 딸기의 하우스 재배가 이뤄지고 겨울에도 딸기를 먹을 수 있게 된 어느 날, 엄마는 말씀하셨더랬다.
"야이야, 딸기를 이래 겨울에도 먹을 수 있으니 참 신기하다 아니가, 그라고 딸기를 눈치도 보지 않고 먹고 싶은 대로 먹을 수 있으니까네 고마 이제 우리도 부자다. 그쟈?"
산지에서 바로 따 내 곁으로 온 딸기 몇 알에 마음이 너무 풍성해진다. 소소하지만 꽉 찬 행복이라고나 할까. 우수가 지났다고는 해도 아직 시린 바람이 남아 있는 2월에, 봄의 향기를 미리 전해 준 딸기로 인해 이 순간만큼은 세상 그 누구도 부럽지 않은 부자가 된 기분, 너무 감사하다. 그래, 살아간다는 것은 늘~ 감사함을 전제로 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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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음악방송작가로 오랜시간 글을 썼습니다.방송글을 모아 독립출간 했고, 아포리즘과 시, 음악, 영화에 관심이 많습니다. 살아가는 소소한 이야기에 눈과 귀를 활짝 열어두는 것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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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도 딸기를... 고마 이제 우리도 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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