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예쁜 종아리, 황인숙 (지은이)
문학과지성사
몸을 거느리고 정신을 가다듬는 황인숙의 넋살이 웃프다. 가시 돋혀 기세등등해 보여도 상대적 하부구조의 삶에서 발끈하다 몸 둘 바 모른다. 여느 캣맘에겐 일상적이어서 사소한 상처일 수 있지만, 흉터가 될 포기 대신 차지게 응수하다 맞닥뜨린 윤리적 속내가 우뚝하다. 예나 지금이나 황인숙의 시에서 발견하는 헛웃음의 시니피앙이다.
그것은 "이 무슨 헛웃음 없이는 읊을 수 없는/짬뽕 뽕짝 같은/삶이란 말이냐/죽음이란 말이냐"(「겨울 이야기」 부분) 같은 화냄도, "더위 따윈 내 인생에서/아무 것도 아니라네"(「이렇게 가는 세월」 부분) 같은 달관 비스무레함도, "발갛게 한숨"(「11월」 부분) 같은 유채색 숨결로 쳐낸다. 건강한 비장이 면역체를 유지하는 방식처럼.
이 또한 지나갈까
지나갈까, 모르겠지만
이 느낌 처음 아니지
처음이긴커녕 단골 중에 상단골
슬픔인 듯 고통이여, 자주 안녕
고통인 듯 슬픔이여, 자꾸 안녕
- 「Spleen」 전문
그렇듯 "자주 안녕" 또는 "자꾸 안녕"하게 되는 루저의 삶에는 오르막길이 많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우하는 "예쁜 종아리"(「내 삶의 예쁜 종아리」 부분)를 가꿀 수 없는 이유다. 그래도 구순하게 어울리려 본뜬 말에 덧댄다. "나는 잘 지내요./틈틈이 삽니다만……"(「나는 잘 지내요」 부분) 그 시적 페르소나를 마주한 내가 부스스 깨어나 꿈틀거린다.
모처럼 황인숙의 시집을 잡고 내리 두 번 읽는다. 6학년생 독거노인의 웃픈 넋살이 반갑기 그지없다. 부족한 경제 형편이어도 까칠함을 잃지 않은 윤리적 현장이 시집 도처에 시적으로 녹아나 있다. 젊을 때 반짝 떴다가 소식 없는 시인들이 부지기수인데, 현역 시인으로서 자기다운 날것을 여전히 읊는 원숙함에 고개 숙인다.
내 삶의 예쁜 종아리
황인숙 (지은이),
문학과지성사,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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