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바지와 호미일바지의 무늬가 화사하고, 호미는 뭉툭하니 닳았다. 월간지 <전라도닷컴>의 사진을 참고하여 그렸다.
김민수
입춘이 지나자 어머니들이 일바지를 입고 들로 밭으로 바다로 나가십니다. 한겨울을 한 데서 온 몸을 땅에 붙이고(로제트형) 자란 냉이, 아직 덜 풀린 땅 속에 있는 씀바귀뿌리, 양지바른 곳에 서둘어 올라온 쑥 같은 것들을 캐서 밥상에 봄을 올리려는 것입니다.
사철 같은 바다로 보이지만, 바다에도 사계가 있습니다. 톳도 따고 바위틈 거북손도 따고 물빠진 바다에서 조개도 캐서 밥상에 봄을 올리겠지요.
하지만, 밥상에 봄을 올리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겠지요. 언 땅을 호미로 파는 행위는 흙을 부드럽게 하는 행위요, 굳어져 공기의 흐름이 막힌 땅의 혈을 풀어주는 일입니다. 그래서 거룩한 행위가 되는 것이요, 봄을 맞이하는 전위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들로 밭으로 바다로 일바지에 목장갑을 끼고 끝이 뭉둑하게 닳은 호미를 들고 나가는 이유는 먼저 봄을 맞이하여, 봄을 기다리는 이들의 희망이 되기 위함입니다.
호미를 처음 사면 끝이 날카롭습니다. 제가 몇 년전에 대장간에서 산 호미는 몇 년이 지났어도 아직 날카롭습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호미는 끝이 다 닳아버려서 뭉둑합니다. 그 뭉둑함만큼 어머니의 삭신도 녹아내렸을 것입니다.
나의 날카로운 호미에는 녹이 앉았지만, 어머니의 뭉둑한 호미는 예리하게 빛납니다. 쓰면 쓸수록 빛나는 존재, 닳아없어진 만큼의 보람, 그렇게 되기까지 흘린 어머니의 그림자 노동, 그것을 알지 못하면서도 어머니의 수고에 기대어 사는 것들을 생각하면 뭉둑한 호미날이 숭고해 보입니다.
코팅된 목장갑을 처음 낄 때면 뻑뻑합니다. 코팅이 벗겨지고 부드럽게 되려면 몇 번의 강도높은 노동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어머니의 호밋자루는 낡아서 검은 테잎을 칭칭 감았고, 목장갑은 부들부들하고 붉디 붉던 코팅색깔도 흐릿합니다.
조만간 코팅도 다 벗겨지고 손가락 어딘가부터 헤지기 시작할 것입니다. 저의 경우는 주로 엄지나 검지 손가락부터 헤지기 시작하는데, 목장갑이 수명을 다하고 헤질 때 은근히 느껴지는 희열감 같은 것이 있습니다. 빨고 또 빨아 쓰는 낡은 목장갑이 있어 그나마 어머니의 거친 손이 조금은 덜 거칠어지니 살신성인의 기품을 그에게서 봅니다.
봄꽃들이 여기저기에서 피어나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일바지에 핀 꽃들은 그들보다 훨씬 먼저 피었습니다. 그리고 한 번 피면 시드는 법이 없습니다. 비록 색은 바래도 한겨울에도 화사하게 피어 있습니다.
젊어서는 이 무늬가 참으로 촌스러워 보였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자꾸만 끌립니다. 화사하고 강렬한 원색에 자꾸 시선이 가는 것을 보니 인생의 황혼기가 오긴 왔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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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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