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으로 곤충을>
장은혜
- <서른 살에 스페인>, <갯강구 씨, 오늘은 어디 가요?> 등 여행작가로도 저서를 몇 권 내셨는데, 좋아하는 여행지는 어디인가요?
"어렸을 때는 도시 근교나 애매하게 도시적인 곳 말고 완전 도시를 좋아했어요. 골목이 많고 건물이 빽빽한, 시각적으로 복잡한 곳들이요. 최근 갔던 곳 중에는 대만이 좋았어요. 대만이 엄청 도시적인데, 기후가 덥다 보니까 도시 한가운데 밀림처럼 숲이 있어서 초현실적이면서 매력적으로 느껴졌어요. 잘 알고 익숙하지만, 반전이 있는 느낌?"
- 갯강구라고 하면 그게 뭔지 사람들이 잘 모를 것 같은데. 필명을 '갯강구'로 쓰는 이유가 궁금해요.
"저는 다 알 줄 알았는데 사람들이 갯강구를 잘 모르더라고요. 갯강구가 뭔지 아는 사람들은 저보고 대뜸 '여수 출신'인지 묻기도 하고요.(웃음) 학생 때 독립출판으로 여행 그림책을 그리면서 평범한 저를 드러내기 위한 장치로 갯강구를 선택했어요. 다른 작가들의 캐릭터와 겹치지 않고, 초성도 'ㄱㄱㄱ'이라 어감도 강해 보이고, (웃음) 유니크한 것 같아 쓰다 보니 갯강구가 되어있더라고요. 클라이언트들이 저를 갯강구라고 부르기 민망해하는 것 같아 본명을 주로 쓰고 있는데, 개인 작업할 때는 여전히 갯강구를 같이 쓰고 있어요."
- 공간에 대한 시선이 남다른데, 서울에 관한 생각이 궁금해요.
"음. 한국 사람들은 서울이 '너무 빨리 변하는 게 아쉽다'는 얘기를 많이 하면서 동시에 '서울에 뭐 볼 게 있냐?'는 얘기들을 해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해외에서 친구들이 서울 오겠다고 하면 '뭐 볼 게 있다고 오냐'며 손사래를 쳤어요.
한번은 외국인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서울이 지금 세계에서 가장 재미있는 도시인데 왜 오지 말라고 하느냐는 거예요. 그래서 서울이 왜 재밌냐고 물었더니 "빠르고 모든 게 많고, 폭발적인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곳이 서울"이라고 하더라고요. 서울이라는 공간에 사는 사람들은 서울이 소비적이고 사람을 쫓아내는 속도가 빨라 서운함을 느낄 수 있는데, '좋다', '나쁘다'라는 가치관을 떠나 빠른 것 자체가 이미 정체성이 되어버린 그런 도시 같아요."
- 항상 젊은이들만 선호하는 도시인 것 같기도 하네요.
"맞아요. 서울은 홍대, 이태원 등지로 20·30대 젊은이들을 다 끌어들였다가 30대를 지나 40대가 되면 경기도 근교로 내쫓아버리는 도시예요.(웃음) 서울이 선호하는 연령대가 딱 정해져 있죠. 20·30대가 지나면 '에이 너희 언제까지 여기 살 거니? 조용한 데 나가서 살아'라고 얘기하는 것 같아요."
다른 사람과의 연대, 사람에 대한 애정 아닐까
- 가장 최근작이 만화라서 놀랐어요. 로컬 만화 프로젝트 <지역의 사생활 99>에 참여했는데. 어떤 프로젝트인가요?
"제가 사람을 잘 못 그려서 픽션은 안 하려고 했었는데요. 그렇게 피했던 사람을 직접적으로 그리게 되었네요.(웃음) 일단 <지역의 사생활> 시리즈는 수도권 외 지역에 관한 이야기예요. 요즘 나오는 대부분의 문화 작품이 서울 중심으로 진행되는데, 군산, 인천 같은 비(非)서울 지역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시작하게 된 단편 프로젝트죠. 저는 시즌 3에서 2199년 속초를 배경으로 SF를 썼어요. <도사의 계절>이라는 만화에요."
- <아침으로 곤충을> 세계관에 따르면 2199년 속초는 이미 바다에 잠겨야 하는데. 세계관 충돌 아닌가요?
"원래 잠겨야 하는데.(웃음) 아무래도 SF의 가치는 디스토피아(Dystopia)적인 미래를 상상하는 것보다는 희망적인 미래를 상상하는 게 가치가 있지 않나 싶어서 그쪽으로 방향을 잡았어요. 기후위기를 어떻게 잘 극복했는지,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 서사를 만들었죠. 그 과정은 정말 어려웠는데요, 하고 나니 앞으로 작업을 발전시키려면 인간에 대한 애정을 가진 작업을 하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사람 그리기를 어려워하는 작가가 사람을 그리게 된다면 앞으로는 화풍이 좀 바뀔 가능성도 있는 건가요
"혼자 했던 생각인데, 제 작품은 좋게 말하면 가치중립적인 것 같아요. 다르게 말하면 무균실의 느낌도 있고요. 하지만 이렇게까지 무균실 같은 작업을 계속해도 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은 오래전부터 갖고 있던 터라 변화의 가능성을 열어두지 않을까 싶어요."
- 마지막으로 일러스트레이터라는 직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현직자로서 조언 한 가지 해준다면요.
"가끔 일러스트레이터 대상으로 강의를 하면 여러 가지 질문을 받아요. '어떻게 하면 작업 의뢰를 받을 수 있어요?'라던가 '데뷔(debut)하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라는 질문이 많아요. 일러스트레이터라는 직업은 대개 기회가 불시에 찾아오고 운이 작용하는 경우가 많아요. 저는 그런 기회가 왔을 때 잘 소화를 했고, 그래서 지금까지 계속 직업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할 수 있는 것 같아요. 클라이언트가 기회를 줬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마감을 잘 맞추는 것이라 생각해요. 저는 맡은 프로젝트를 깔끔하게 끝내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이런 부분들을 중점적으로 준비해가면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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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30대 지나면 '그만 나가'라고 하는 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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