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 고용노동부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 중 발췌
강홍구
이런 논의가 나올때면 중요한 사례로 단골로 등장하는 게 '로벤스 보고서'다. 약 50년 전인 1966년 영국의 한 탄광마을에서 폐기물이 초등학교를 덮쳤고, 150명에 달하는 어린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 참사를 계기로 구성된 위원회의 해법은 더 효과적인 자율규제 시스템의 도입이었다.
하지만 이 보고서의 내용 어디에도 '기업을 처벌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지 않다. '책임을 강제하는 법을 없애자'는 말도 나오지 않는다. 영국에는 기업살인법(기업과실치사법 및 기업살인법)도 존재한다. 이 법안은 기업의 책임강화를 위해 2007년에 제정됐다.
정부는 자율이라는 글자에만 방점을 찍은 것 같다. 자율에는 책임이 따른다. 그저 방임해도 좋다는 뜻이 아니다. 취지를 이행하기 위해 제도를 보완하는 데 이견은 없다. 다만 제도 개선이라는 명분을 그대로 관철하려는 태도는 옳지 않다. CEO에 대한 처벌 조항이나 50인 이하 사업장에 대한 적용유예를 연장하는 게 입법 취지 실현에 어떤 도움이 될지 의문이 가시지 않는다.
정부는 6월에 개정안을 내놓겠다는 입장이다. 지난 1월에 고용노동부의 TF가 출범했는데 불과 한달 만에 최고경영자 처벌 조항을 없애자는 논의가 있었다고 보도가 나왔다. 고용노동부에 확인한 바로는 확정된 내용이 없다고 말한다. 두 번째 회의가 진행됐고, 아이디어를 모으는 자리였다는 주장이다.
이 법안이 규정한 중대시민재해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입법 과정에서 김용균씨로 상징되는 산업현장의 이슈들이 강조되었던 영향도 있었다. 제2의 참사를 막기 위해서는 심도 깊은 고민과 논의가 필요하다. 지난해 10월 발생한 10.29이태원참사를 거치며, 공무원들에 대한 처벌 조항이 필요하다는 여론도 제시되고 있다.
'만약에'라는 가정은 의미 없다지만, 중대재해법이 일찍 자리를 잡았다면 어땠을까 입맛이 씁쓸할 때가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가습기살균제 참사다. CMIT/MIT 원료로 제품을 판매한 SK케미칼와 애경산업, 이마트 등에게 적용된 법률은 업무상 과실치사상이다. 원심재판부는 2021년 초에 전부 무죄 판결을 통해 기업들의 손을 들어주었고, 항소심 재판에서도 전망이 밝지는 않다. 검찰은 여전히 인과관계 입증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옥시RB 또한 신현우 전 사장을 비롯한 일부 인사들이 징역 6년을 선고받는 데 그쳤다.
서두에 잠시 언급했던 지인은 비용 문제도 말했다.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로서는 경쟁력이 중요하고, 안전에 대한 투자를 많이 하면 비용도 늘어나서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또한 안전 조치가 개선되서 80년대의 열악한 환경과는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고도 했다.
그의 말이 100%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경제 규모는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지만 핵심 기술들을 갖고있는 선발 주자와 저렴한 가격으로 뒤쫒아오는 후발 주자 사이에서 우리도 끝없이 달려가야 한다. 생존을 위한 절실한 그의 생의 감각도 존중한다. 하지만 그의 의견만큼 존중받아야 하는 내용도 있다.
여전히 매년 1000명에 가까운 사람이 목숨을 잃고 있다. 단지 일을 하러 간 사람들이었다. 위험은 외주화되었다. 원청은 자신의 책임이 없다고 한다. 중소기업의 이행여력이 없다는 말은 단골메뉴지만 이행을 끌어올릴 방법은 내놓지 않는다.
중대재해법을 둘러싼 비판을 보면 기시감이 든다.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겪어내며 강화된 화학안전 3법, 특히 화평법(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등에 관한법률)에 대한 논쟁의 양상도 비슷했다. 참사의 충격은 잊혀가고, 경제가 어렵다느니 비용 절감과 기업경쟁력 강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슬며시 다시 올라오기를 반복한다. 이를 우리 사회의 최고 규범으로 여기는 것 같기도 하다.
법학자 알렌 쉬피오는 "참극은 반복되는 게 아니라, 새로 모습을 바꿀 뿐이다. 과거의 기억이라는 저지선을 믿는 것으로 재발을 막을 수 없으며, 법적 장치를 굳건히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도 사회도 바로 서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이번에는 바로 설 수 있을까, 안전이라는 가치를 지켜낼 수 있을까. 안전사회를 위한 법안의 필요성은 그대로 남아있다.
이미 뜨거운 감자인 중대재해법의 향방은 우리 사회의 중요한 가늠자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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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처법 흔들며 '자율' 외치는 정부... 이 참극을 멈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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