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위해 환하게 불켜둔 ADFC 사무실. 이 공간에서는 회의를 하기도 하고 자전거 수리 등을 가르쳐 주는 공간으로도 활용된다. 이외에도 자전거 투어를 조직하거나 자전거 관련 정치적 요구를 전달하는 등의 활동을 펼친다.
김길중
특이하게도 이날 일정은 유일하게 저녁 시간으로 잡혔다. 민간인들의 자원봉사로 단체가 유지되는 만큼 저녁 시간의 일정을 ADFC 측에서 먼저 제안한 것이었다. 나중에 별도로 소개하겠지만 이런 연락 과정은 뮌스터란드 한인회 서봉석 회장님의 도움이 매우 컸다.
ADFC지부 및 뮌스터 시청과의 약속이 잡힌 것을 확인하고서도 세심하게 여러 가지를 챙겨주셨다 '매사 철저하고 분명한 것을 중시하는 독일 사람들 특성상' 혹여라도 우리가 결례를 범하거나 하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과, 보기 드문 모국 사람들의 방문에 대한 기대와 관심이 컸기 때문 아니었나 싶다.
오후 5시에 뮌스터에 도착하였다. 서둘러 짐을 풀고 각자 저녁을 해결하고 ADFC 사무실까지 걸어서 간다. 'Dortmunder Strasse 19, 48155 뮌스터'의 주소를 가진 주택가 한가운데의 작은 사무실이 있었다.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는데, 6명이 나와 환영해 준다. 서로 간의 인사를 마치고 카타야 쉬프만(Katja Siepmann)씨의 발제가 시작됐다.
'독일 내 최고의 자전거 도시'라는 자부심
프레젠테이션은 1945년 2차 세계대전의 폐허를 담은 사진으로 시작한다. 도시 전체적으로는 63% 도심부는 91%가 파괴된 채 전쟁이 끝났다고 한다. 이를 재건하기 위한 원칙은 '전통과 현대의 조화'였다고 한다. 이때만 해도 궤도 전차가 남아 있었고 이를 활용하기로 했다. 그러나 점차 자동차가 증가하게 되었다고 한다. 1960년대에는 이런 추세가 본격화되고 늘어나는 자동차 교통을 해결하기 위한 우회 고속도로 등이 놓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뮌스터의 특이한 점은 자동차가 늘어나기 시작했지만, 자전거 이용이 줄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한다. 뮌스터가 자전거 도시가 된 걸 언제부터라고 특정할 수 없는 것도 그래서다. 그래서 뮌스터는 자전거 도로(우리나라로 치면, 인도 위의 보행자 겸용 도로)를 놓기 시작했단다.
이후 수십 년 동안 주목할만한 변화가 없었지만 독일 내 자전거 도시로서의 평판은 이어졌다. 2000년대 이후 독일 내 자전거 도시 평가에서 여러 차례 1위를 차지한 뮌스터에 대한 자부심은 매우 커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