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법남녀2> 스틸 사진
MBC
그래서 배우란 직업이 한편으론 좋았다. 작품 속 이름으로 잠시나마 살 수 있으니까. 근사한 배역명 앞에서 활동명이라도 바꿔볼까 하는 고민도 살짝 들었다. 네이버에 김지성을 검색해봐도 '같은 이름 다른 인물'로 32명이 나온다. 대중에게 각인될 희소성 있는 이름을 갖고 싶다면 계기는 충분하지 않은가.
바꾸기엔 너무 늦은 거 아니냐고? 최근 왕성하게 활동 중인 1968년생 선배님도 이름 바꿨다며 새 이름으로 10번만 불러달란다. 태어날 때부터 예쁘고 멋진 이름으로 사는 사람들, 자신의 이미지와 딱 맞아떨어지는 활동명을 찾은 배우들을 보면 그것도 타고난 복이고, 진정한 능력 아닐까.
쉽사리 이름을 바꾸지 못하는 이유
이름이란 과연 무엇인가. 정말 이름을 바꾸면 운이 달라질까. 차라리 개똥이, 말똥이 같은 이름이면 결심도 쉬울 것을, 바꾸기도 뭔가 애매한 위치에 서 있는 듯한 이름 '김지성'. 가족, 지인들도 하나같이 미련은커녕 숙원이 풀린 것처럼 후련하기만 했다는데 불릴 때마다 한 번도 반겨주지 않았고, 날이 갈수록 더 마음에 두지 못하는 김지성으로 계속 살 것인가? 나는 왜 이름을 바꾸지 않는가.
올 연초에, 덕담 삼아 해줬던 선배 언니의 말이 이런 생각들을 일시적으로 멈추게 했다. "넌 이름처럼 될 거야...!" 거짓말처럼 이름에 대해 빗장으로 걸어 잠갔던 마음의 문이 빼꼼히 열리기 시작했다.
"'지성'. 새로운 상황에 부딪혔을 때에, 맹목적이거나 본능적 방법에 의하지 아니하고 지적인 사고에 근거하여 그 상황에 적응하고 과제를 해결하는 성질. 슬기와 덕행이 뛰어난 성인. 아주 성실한. 지극한 정성."(네이버 어학사전 발췌)
어쩌면 쉽사리 이름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가, 부족했어도 이름처럼 살기 위해 나름 노력해왔던 세월을 송두리째 버릴 수만은 없어서가 아닐까. 그래서 생각을 조금 달리 가져보기로 했다.
처음으로 내 이름에 좋아할 시간을 줘보는 건 어떨까. 정말 사람이 이름처럼 된다면 이름값을 해보기 위해서라도, 무턱대고 반감부터 가졌던 지난 시간을 덮고 지금의 자리에서 이름을 가꾸며 나를 좀 더 사랑해보려는 노력도 괜찮지 않을까.
'지성이면 감천'. '정성이 지극하면 하늘도 감동하여 도와준다'는 뜻처럼, 그만큼 애를 써야만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는 삶일지 모르겠으나, 뭐 다들 애쓰고 살아가니 그다지 억울할 것도 없지 않은가.
거기까지 생각하니, 이름과의 해묵은 감정도 어느덧 사라졌는지 나도 내 이름을 갖고 슬슬 놀리고 싶어졌다. 연재 제목으로 '배우 김지성 에세이'가 적잖이 쑥스러워 "매달 말일마다 게재하기로 한 거, '월말엔 지성보다 감성'이 어떠냐?"고 <오마이뉴스> 편집기자에게 제의했는데 단박에 거절당했다. 나의 이런 깊은 사연을 모르니 농담인가 싶어 그러셨겠지만, 에세이 연재가 계속 이어진다면 언젠가 다시 도전해볼 생각이다.
뜬금없이 작명의 근원도 궁금해져, 불쑥 안방으로 건너가 "엄마, 내 이름은 누가 지었어?"라고 물었다. "지성이? 엄마 아빠가 지었지." 그 순간 신기하게도 엄마의 입 안에서 흘러나온 '지성~'이 풍경 소리처럼 아름답게 울려 퍼졌다. 실로 생경하고도 설레는 첫 경험이었다. 엄마가 내 이름을 이토록 정확한 발음으로 울림 있게 불러주다니.
"와, 엄마가 지성~ 하고 불러주니까 정말 예쁘게 들린다. 내 이름이 예뻤네! 근데, 왜 한 번도 날 지성이라 불러주지 않았어? 맨날 지슨아~지슨아~ 그랬잖아."
"미안하다. 사투리다. 경상도는 이응 발음 잘 안 된다."
기나긴 고민을 털고 새 이름으로 다시 시작하는 이들의 앞날에 힘찬 응원의 박수를 쳐주고 싶다. 바꾸지 않고 지금의 이름을 선택한 이들에게도 아낌없는 지지를 보낸다. 우리 모두 이름 이전에, 존재 자체만으로도 빛나는 가치가 있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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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은 배우이며, 끄적끄적 글쓰는 취미를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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