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민·소성욱 부부
박영록
30대 동성부부인 김용민씨와 소성욱씨는 지난 2월 21일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낸 행정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했다. 1심과 달리 "배우자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해달라"는 이들의 요구가 법정에서 받아들여진 것이다. 소수자 인권이 진일보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 모든 일의 시작은 2020년 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건강보험 직장가입자인 김씨는 배우자인 소씨를 피부양자로 건강보험공단에 신고했다.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는 건강보험료가 면제되는데 법적 부부가 아니더라도 사실혼 관계라면 등록할 수 있다. 동성부부라 등록이 안 될 거라는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소씨는 피부양자 자격을 얻었다. 두 사람이 드디어 부부로 인정받은 것이다.
그러나 이 소식이 세상에 알려지자 공단은 돌연 취소를 통보했고, 소씨의 피부양자 등록은 하루아침에 '없던 일'이 됐다. 뭐든 줬다가 뺏으면 더 분한 법. 소씨는 "건보료 부과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빼앗긴 권리를 되찾는 소송을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항소심에서 이겼다. 이에 불복한 공단은 지난 3월 6일 상고했다. 대법원 판단에 이목이 모인다.
지난 3월 13일, 5년 차 동성부부이자 인권 활동가인 김·소 부부를 만났다. 두 사람은 "(통상) 법적으로 부부에게는 1000가지 권리를 준다는데, 한 가지 권리를 획득할 때마다 이번처럼 2년이 걸린다면 우리에게 2천 년이 필요하다. 그때마다 이렇게 싸울 수는 없다"며 "혼인을 평등하게 할 수 있는 동성결혼 법제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가능하다'고 할 땐 언제고... 공단, 언론에 보도되자 '실수였다'며 자격 박탈"
-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받았다가 박탈된 상황을 듣고 싶다.
김용민: "2020년 2월 건보공단 홈페이지에 '동성부부라서 혼인신고는 못 올렸지만 우리는 사실혼 관계다. 피부양자 자격 취득 신고를 할 수 있는지 알려 달라'고 민원을 넣었더니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공단에서 알려준 절차대로 신청해서 성욱이가 나의 피부양자로 등록됐다. 그런데 약 8개월 뒤 언론 인터뷰를 통해 이 소식을 알렸더니, 보도가 나가고 단 2시간 뒤에 공단 측에서 '실수였다'고 통보하고는 일방적으로 자격을 박탈했다."
- 공단이 내세운 취소 사유는 무엇이었나? 그리고 소송을 결심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김용민: "우리가 동성부부인지 모르고 (피부양자로) 등록했다고 하더라. 사실 처음에 신청했을 때 피부양자 등록이 안 됐다면 '에이, 안 되네' 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데 한번 됐다가 박탈되니까, 정당한 내 권리를 뺏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청 절차에는 하자가 없었고 필요한 서류도 다 갖췄다. 모든 조건을 다 만족하는데 '동성'이라는 이유만으로는 등록이 안 된다는 것은 너무 부당하게 느껴졌다. 우리로서 소송은 당연한 선택이었다."
- 1심 법원은 혼인을 '남녀의 결합'으로 보고 동성부부를 사실혼으로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2심에서 무엇을 설득하려 주력했나?
소성욱: "1·2심 모두에서 우리는 '헌법상 평등의 원칙에 비춰봤을 때 차별 행위'라는 논리를 폈다. 다만 2심에선 전문가들 의견서를 보완하는 데 주력했다. 다행히 2심 재판부도 첫 기일부터 '평등의 원칙을 재판 쟁점으로 삼겠다'면서 양쪽 모두 그에 맞춰 주장을 보완하라고 했다."
- 항소심 선고가 나온 그 순간은 어떤 느낌이었나?
김용민: "재판장이 문장 세 줄만 딱 주문
(主文) 1)*(하단설명참조)으로 읊었다. '보험료 부과 처분을 취소한다. 1심 판결을 취소한다. 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 판사가 '취소한다'고 하는데, 나는 법적 용어를 잘 몰라서 우리가 이긴 건지 진 건지 너무 헷갈렸다(웃음). '뭐지? 뭐지?' 이러고 있는데 같이 왔던 동료가 눈시울을 붉히며 '이겼다'고 해서 나도 덩달아 울었다. 많은 분이 응원하러 와주셨고 모두 기뻐했다."
소성욱: "얼떨떨했다. 나는 그래도 1심과 다른 결과가 나왔다는 것은 알아들었다. 그래서 용민이 손을 꽉 잡았는데, 용민이는 계속 '어떻게 된 거야?' 물어보더라(웃음). 주문이 딱 세 줄뿐이라 판결문의 내용은 어떨지 불안한 마음은 있었다. 이긴 건 이긴 건데, 우린 또 판결문을 자세히 봐야 하니까."
- 판결문 내용에서 어느 대목이 인상 깊었나.
소성욱: "1심은 우리의 관계가 이성애 사실혼 관계와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판단했다. 본질적으로 다르니 (이렇게 해도) 차별이 아니라는 논리다. 그런데 2심은 우리가 이성애 사실혼 관계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봤다. 나아가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은 더 이상 설 곳이 없다'는 문장, '누구나 소수자일 수 있고, 다른 것이 틀린 것은 아니다'는 대목, '법원은 인권 최후의 보루로서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표현도 있었다. 많은 사람에게 울림을 준 판결이라고 생각한다."
"1심 판결 뒤집은 항소심... 얼떨떨했다"
- 성소수자 입장에서 이번처럼 소송을 통해서라도 넘어야 할 또 다른 제도가 있다면?
소성욱: "우리가 이 판결문을 보기까지 2년이 걸렸다. 결혼한 부부에게 법적으로 주어지는 권리가 1,000가지 정도 된다고 한다. '건강보험 피부양자 인정'은 그 가운데 한 가지일 뿐이다. 한 가지 권리를 획득할 때마다 이렇게 2년씩 걸리면 우리에겐 2천 년이 필요하다(웃음). 그때마다 싸울 수는 없다. 혼인을 평등하게 할 수 있는 '동성결혼 법제화'가 필요하다."
김용민: "결혼이라는 제도를 놓고 여러 의견이 있지만, 제도를 누린 뒤에야 불편하다는 평가도 할 수 있을 텐데 우리는 제도에 진입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불편함을 느끼고 싶어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당장 하나만 예를 들면, 법원 등기는 본인 아니면 가족만 수령 가능하다. 이번 재판에서 성욱이는 원고, 나는 소송의 당사자가 아닌 '소(訴) 외인(外人)'이었다. 나도 당사자인 사건인데 성욱이에게 온 법원 등기를 내가 받을 수 없었다. 어찌 보면 사소한 것이지만, 우리에겐 사소하지 않은 것이다."
소성욱: "가령 우리는 신혼부부 전세자금 대출제도를 이용할 수 없다. 이성애 신혼부부에게 주어지는 혜택이 우리에겐 주어지지 않는다. 한번은 내가 몸이 너무 아픈데 병원을 갈 수 없는 상황이 있었다. 그때 용민이가 내 가족이라는 걸 서류로 증명할 수 있었다면 나 대신 약 처방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병원에선 '미안하지만 두 분 관계가 가족이라는 사실이 서류로 증명되지 않아 도와줄 수 없다'고 했다. 우리에겐 가족으로 살아갈 수 있는 권리가 필요하다."
- 이번 판결과 관련해 생활동반자법2)*(하단설명참조)도 많이 회자됐다.
소성욱: "다양한 가족 구성을 인정하는 생활동반자법도 물론 제정돼야 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동성결혼 법제화도 강조해야 한다. 생활동반자법은 가족 구성 문턱을 낮추는 넓은 법이지만, 결혼을 통해 확보되는 권리를 이 법이 모두 보장해주진 않는다. 혼인제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권리는 동성결혼 법제화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진보언론들도 이번 승소 판결 소식을 다루며 기사 말미에는 생활동반자법으로 마무리하더라.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도 생활동반자법만 언급할 뿐 동성결혼 법제화는 입에 올리지 않았다. 동성결혼 법제화에 대한 언론과 정치의 거부감이 여전히 큰 것이다. 그러나 어떤 시민은 혼인제도에 들어갈 수 있고 어떤 시민은 불가한 '제도의 차별'에 주목해야 한다."
김용민: "서로의 관계를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것은 가장 기본적 권리 중 하나다. 우리는 부부로 살고 있는데도 부부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혼인제도에는 진입조차 할 수 없다. 그 자체가 차별이다. 우리는 평등권을 침해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