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활동기간 연장안을 의결하고 있다.
유성호
1 국회의원 정수
법률로 정한 국회의원의 의석수. 공직선거법 제21조 제1항에 따라 현재 대한민국 국회의원은 지역구 의원 253명과 비례대표 의원 47명을 합하여 총 300명이다. 지역구 의원은 84.3%인 반면 비례대표 의원은 15.7%에 불과하다. 비례대표 의석 비율을 늘려야 선거의 비례성을 높일 수 있다.
2 선거의 비례성
정당 득표율과 의석수가 비례하는 정도. 지난 21대 총선 당시 거대 양당의 위성정당이었던 더불어시민당(33.4%)과 미래한국당(33.9%)은 총 67.3%의 정당 득표율을 얻었다. 그러나 두 거대 양당이 차지한 의석은 총 283석이며 의석 점유율은 94.3%에 달한다. 이럴 때 "선거의 비례성이 낮다"고 표현한다.
3 사표(死票)
죽은 표, 즉 '의석에 반영되지 않는 표'를 말한다. 최다득표자 1명만 선출하는 지역구 선거에서는 당선자 이외 다른 정당 후보자를 지지하는 유권자의 표는 사표가 된다. 단,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면 내 표가 지역구 선거에서 사표가 되더라도 정당 득표율이 비례대표 의석 배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를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
22대 국회의원 선거가 1년 앞으로 다가왔다. 현행 선거법에 따라 선거 1년 전인 2023년 4월 10일 전에 선거구가 획정돼야 하지만, 선거구 획정을 위해서는 지금보다 나은 선거제부터 마련해야 한다. 그래서 지금 국회는 매우 바쁘다. 봇물 터지듯 다양한 선거제도가 거론되고, 심지어 그동안 정치적 금기어와도 같았던 '국회의원 증원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국회의원 증원에 대한 여론은 좋지 않다. '대체 국회의원들이 하는 일이 뭐냐'는 비판이 다수다. 그러나 욕을 하더라도 제대로 알고 해야 하지 않을까.
국회의원은 법률을 바꾸거나 만든다. 또한 국정감사와 예산안·결산 심사 등을 통해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과 각 부처를 견제하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국회에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만한 인력이 있는지 살펴보자.
민주화 이후인 1988년 당시 13대 국회가 심사한 예산안 규모는 약 18조 원이었다. 그런데 현재 21대 국회는 매년 600조 원이 넘는 결산과 예산안을 심사한다. 34년 동안 국가 예산이 약 35배가 늘고 법안 발의 건수도 약 26배(938건→2만4141건) 늘었지만, 국회의원은 고작 1명 늘었다. 게다가 2021년 기준으로 행정부 공무원은 약 113만 명인 데 비해 국회의원·보좌관 등 입법부 공무원은 고작 4801명에 불과하다.
행정부 공무원 113만 명에 상응하는 국회의원과 공무원을 국회에 두자는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5000명도 안 되는 입법부 인력이 약 235배나 인원이 많은 행정부를 제대로 견제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핵심 업무인 예산 심사, 국정감사 등은 물론이거니와 법안 심사까지 모두 부실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국회의원을 증원해 예산 심사를 철저히 하면, 증원에 투입되는 예산보다 훨씬 더 많은 국가 예산 낭비를 줄일 수 있다.
게다가 과도한 권한을 분산시키기 위해서라도 국회의원을 늘릴 필요가 있다. 국회의원의 숫자가 적을수록 국회의원 1명이 갖는 권한은 더욱 커진다. 반대로 국회의원이 늘어나면 그만큼 권한은 줄어든다.
선거개혁을 위해서도 국회의원은 늘려야 한다. 지역구 선거에서는 표를 가장 많이 받는 1명만 뽑는다. 그러다 보니 거대 정당이 지역구 의석을 독식하고, 작은 정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의 의사는 제대로 반영되기 어렵다.
그래서 지역구 선거와 함께 정당에 직접 투표하는 비례대표 선거를 진행하는 것이다. 비례대표의 비율이 늘어날수록 다양한 정당을 지지하는 시민의 의사가 의석수에 반영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의원 정수는 그대로 두고 지역구 의석을 줄여 비례대표를 늘리자고 주장하지만, 현역 지역구 의원들이 자신의 지역구를 포기하지 않는 한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온종일 국회를 감시하고 비판하는 나조차도 '국회의원 증원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딱 하나다. 지금 국회에는 나를 대표할 국회의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4년 동안 정부를 제대로 감시하고, 잘못된 행정의 시정을 요구하고, 누구도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위해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가진 딱 한 사람이라도 국회에 있어 주길 바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