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 회의실에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주69시간 근로시간 개편안에 대해 찬성과 반대 의견을 묻는 조사판이 놓여있다.
유성호
- 정부가 노동시간 유연화 정책을 도입하겠다고 했지만, 논의가 오락가락하고 있습니다. 이 상황은 어떻게 보고 계세요?
"저도 오락가락하는 이유가 궁금해요. 아마 조직 간의 소통 부족도 있을 테고요. 여러 가지라고 볼 수 있는데요, 개편안 자체에 내재한 모순점 때문에 의견이 충돌하고 정리가 안 되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 어떤 모순점인가요?
"개편안 발표하면서 선택권, 건강권, 휴식권을 보장한다고 강조하고 있는데요. 이런 매력적인 가치들이 불건강과 불균형을 유발할 수 있는 개편안의 내용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모순적인 지점이 있습니다. 장시간 노동과 불규칙한 노동이 발생할 것을 알면서도 이걸 노동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내세우려는 점도 인지와 행동이 서로 조화되지 못하는 상황을 유발하는 것이고요. 이러한 가운데 이견들이 조정되지 않으니 오락가락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 왜 안 맞을까요?
"여러 연구에서도 (장시간 노동이) 불건강과 불균형을 유발한다는 결과들이 많고 그 결과들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이걸 개혁으로 포장하려고 하니 내부에서도 부대끼고 답답한 노릇일 것이라 봅니다.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노동시간 단축이라고 하는 게 역사적 흐름이라는 걸 알잖아요. 기후위기 맥락 속에서 노동시간 단축이야말로 시대적 과제이고, 워라밸에 대한 사회적 기대가 높다는 걸 다 알고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를 역행하는 듯한 69시간제를 포장하려고 하니 얼마나 이견이 많겠습니까.
또한 개편안은 그렇게 강조했던 법치주의와도 상충하는 안이라고 봅니다. 법정근로시간 40시간을 훨씬 상회하는 안이기 때문에 스스로 법치주의의 발목을 잡는 자가당착적인 정책입니다. 정책을 추진하는 데 탄력을 받을 수 없고 오락가락하면서 스스로 어그러지는 와중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 윤석열 대통령 생각은 '일할 때 몰아서 하고 쉴 때 길게 쉬는 게 낫다'는 것 같은데.
"언뜻 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수 있잖아요. 그런데 이게 현실적으로는 어렵지 않겠습니까. 이런 현실 적합성이 떨어지는 발언이야말로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많은 사람의 직장 생활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는 얘기이지 않을까 합니다.
몰아서 일하는 것의 불건강이라든가 일상생활의 불규칙성이라든가 건강 차원뿐만 아니라 가족관계, 사회참여, 여가 활동에도 상당한 불규칙성을 야기해 삶을 힘들게 만듭니다. 100번 양보해서 몰아서 일하는 게 가능하다 하더라도 개인 삶의 관점에서 질이 안 좋은 방식인 건 분명해 보입니다."
-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69시간 근무는 극단적인 가정'이라고 하던데.
"극단적일 뿐이라는 멘트가 계속 나온다는 게 좀 섬뜩한 부분이 있어요. '69시간 상황은 극단적이다', '최대 기준일 뿐이지 그렇게 최대 69시간까지 꼭 다 일하는 건 아니다', '극단적인 예외를 들어 정책을 폄하하지 말라'라고 얘기하는데 상한 시간을 높여 놓으면 일을 최대치까지 시키는 게 현실인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법 위반이 일상인 상황이라고들 말하는데, 69시간제를 극단적인 가정이라고 치부하는 건 정말 무지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9시간이 극단적인 가정이라고 한다면, 한국 사회에서 왜 과로사나 과로 자살 같은 극단적인 비극들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발생하는지도 설명이 안 되는 거잖아요. 해외에서도 과로사를 'kwarosa'라고 고유명사로 표기할 정도죠. 사실 극단적인 가정이란 인식이 무지보다는 무책임으로 보이고요. 그래서 더욱 섬뜩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 지금은 주 52시간제인데요. 이조차도 건강에는 안 좋다는 얘기가 있더라고요.
"법정근로시간 40시간을 기준으로 5시간 더 일하는 집단 또는 10시간 더 일하는 집단과 건강 영향을 비교하는 연구를 보면 후자들의 불건강 정도가 더 높다는 연구 결과들이 많습니다. 더 긴 시간 일할수록 운송노동자의 경우 요통 정도나 사고위험이 더 높아지고, 서서 일하는 노동자의 경우 하지정맥류의 질환이 더 심하고, 통행료 징수원 같은 경우 방광염의 정도가 높아지고, 야간노동자의 경우 수면장애 비율이 더 높다는 것입니다. 법정근로시간 40시간을 기준으로 놓고 보면 작금의 논의들은 불건강과 불균형을 야기하는 기이한 형국입니다."
- 작년 합계 출산율이 0.78 명으로 나타나 충격을 줬잖아요. 출산율 문제도 노동 시간과 연결된 것 같은데.
"질문의 문제 제기에 적극 공감합니다. 앞서 장시간 노동이 신체 건강이나 정신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그것이 업종별로도 건강상의 장애를 선명하게 남긴다고 말씀을 드렸듯이 가족관계, 사회참여에도 불균형 정도를 높인다는 연구들이 많습니다. 장시간 노동이 플라스틱 유발, 탄소 유발하는 라이프스타일과 연결되고 이것이 지구 환경에도 문제이기에 노동정책은 환경정책과도 긴밀하게 연결된다는 논의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실제 기혼 유자녀 노동자들, 특히 맞벌이의 돌봄 스트레스가 여러 형태로 보고되고 있는데, 직간접적으로 과로 체제가 결혼 기피 또는 출산 기피 경향과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고 봅니다. 물론 경제 문제, 주거 문제, 교육 문제 등 여타 구조적 요인들이 많겠지만, 작금의 69시간제 또한 출산정책과 정반대되는 안이지 않을까요."
"선택적 소통하는 정부... 퇴행 개편안 저지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