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농으로 농작물을 재배하는 박해성씨의 농장.
경북매일 자료사진
견인불발(堅忍不拔)과 기호지세(騎虎之勢).
경북 포항 기계면에서 농사를 짓는 박해성(57)씨를 만나며 떠올린 이 두 사자성어는 예기치 않은 불행과 그 불행을 넘어서려는 그의 노력을 가장 간명하게 표현한 게 아닐까 싶다.
서울에서 태어나 별다른 부침(浮沈) 없이 살아온 박씨는 20대 후반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는 남편의 치료를 위해 경상북도를 찾았다. 일정 기간이 지나자 남편의 병이 호전되는가 싶었는데, 또 다른 고난이 박씨를 찾아왔다. 자기가 암에 걸린 것.
낯선 포항에서 문구점과 레스토랑 등을 운영하던 그는 "자연이 병을 치료해줄 수 있다"는 말에 기대 생전 처음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한다.
"놀랍게도 육체적으로 힘든 농사일이 가슴과 자궁 안으로 번져가던 암세포의 증식을 거짓말처럼 막아냈다. 그때 생각했다. 흙을 만지며 사는 게 앞으로의 내 삶이 될 수도 있겠구나."
결심은 실행으로 이어졌다. 포항시 북구 기계면으로 들어가 깨와 감자, 무 등을 심기 시작한 것. 마흔을 넘겨 늦깎이 농사꾼이 된 박씨는 자신을 치료해준 고마운 땅이니 농약 없이 유기농으로 농작물을 가꾸게 된다. 처음엔 실패와 고생이 없을 수 없었다.
새벽 5시부터 해가 질 때까지 일에 열중했지만, 수확량은 다른 농지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었다. 당연지사 거기서 이익이 나올 수 없었다. 그러나, 노력은 사람을 배신하지 않는 법.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땀과 눈물을 쏟아 부은 땅은 얼마 전부터 박해성씨에게 '은혜'를 갚기 시작했다.
그가 운영하는 농업회사 하이청이 공력을 쏟아 부어 만든 금화규 마스크팩이 뷰티센터 이용자들에게 호평 받았고, 21세기형 환경 친화제품이라 할 대체육도 꼼꼼하고 까다로운 평가 과정을 통과해 대형마트와 백화점에 입점하게 된 것.
사실 이전에도 박씨는 작지 않은 사업성과를 올린 바 있다. 포항에서 미국으로 처음 무를 수출했고, 저 멀리 아랍에미리트 두바이로 시래기를 수출하는 저력을 보이기도 했다.
17년 전 치유가 힘든 암을 앓았던 여성이 고통과 절망에 굴하지 않고 지금과 같은 열정적인 삶을 살 수 있었던 배경엔 어떤 이야기가 숨겨져 있을까?
앞서 언급한 견인불발은 '어떤 상황에서도 꺾이지 않는 굳센 의지'를, 기호지세는 '달려온 길을 더 정열적으로 뛰어가는 힘'을 의미한다. 지난 3월 24일. 이 두 사자성어가 딱 어울리는 박해성씨를 만났다. 아래 그날 주고받은 이야기를 요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