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시 명석면 관지리 삭평마을 야산에 있는 한국전쟁전후 민간인 학살지 발굴 현장.
진주유족회
"아이고 아버지 ..."
4일 오후 경남 진주시 명석면 관지리 삭평마을 민간인 학살지 유해 발굴 현장을 본 강도영(76)씨가 목놓아 울면서 한 말이다.
강씨는 "어머니의 증언에 의하면, 아버지께서는 논일을 하다가 면사무소에서 오라고 해서 가셨다가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셨다. 이후 어머니는 아버지를 찾으러 현장에 갔다가 피투성이가 된 유해들만 보고 아버지 시신을 찾지 못했다고 하셨다. 그런데 아버지 유해를 찾을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을 하니 눈물이 나온다"고 말했다.
정연조 한국전쟁전후민간인피학살자 진주유족회 회장은 "70년 넘게 이름 없는 산에서 아무도 모르게 묻혀 계셨던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이번에 아버지 유해를 찾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또 진주유족회 정영우(79) 회원은 "아버지는 국민보도연맹 교육을 받으러 가셔서 그 길로 돌아오시지는 않았다고 한다"며 "이번 발굴을 통해 드러난 유해를 보니까 비통함에 목이 메인다"고 말했다.
이곳은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지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2기, 진실화해위)가 동방문화재연구원회 맡겨 발굴을 했고, 이날 중간 보고회를 열었다. 이곳에서는 1950년 7월경 민간인 유해 50여구가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되었는데, 이날 나온 유해는 20구 정도다.
발굴된 유해는 두개골 2점과 허벅지뼈·정강이뼈 등 80여점이고, 학살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탄피와 탄두가 나왔고, 피학살자들이 옷에 있었던 단추와 칫솔, 틀니, 동전도 나왔다.
동방문화재연구원은 "허벅지뼈와 정강이뼈 등은 일정한 너비에서 2중, 3중으로 중첩돼 나왔고, 완전한 형체의 유해와 정형성을 보이는 유해는 없다"며 "유해가 구덩이 내부 공간에 2~3겹 포개진 상태로 매장되어 있었고, 정형성이 없고, 세워진 유골이 없이 지면에 편평하게 놓여 있는 점으로 보아 주변의 유해를 2차적으로 이 구덩이에 모아 매장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또 연구원은 "이번에 조사된 유해는 전신유해는 확인할 수 없었으나 두개골, 허벅지뼈, 정강이뼈 등이 나왔다"며 "정확한 수량은 추후 수습조사와 감식조사를 통해 밝혀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매장지와 관련해, 연구원은 "이 지역은 표토층 아래서 암반이 노출되어 원지형이 유실된 것으로 보여 유해가 매장되었을 가능성도 없는 것으로 판단되었다"고 했다.
이곳에서 나온 유해, 유품은 감식 과정을 거쳐 진주시 명석면 용산고개에 있는 임시안장시설(컨테이너)에 보관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