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자동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장.
안홍기
김준엽과 이종찬의 노력으로 국가의 기본법인 헌법에 그것도 전문에 대한민국이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는 것으로 성문화되었다. 구술이 서 말이라도 꿰매지 않으면 가치가 없다. 더욱이 헌법 전문은 자칫 구색용 장식품에 그치기 십상이다. 그래선지 성문화가 되고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한민족은 일본제국주의 무력침략으로 국권을 상실한 지 9년 만에 3.1혁명을 일으키고, '강도일본'이 점거한 국토를 떠나 이역에서일 망정 임시정부를 세움으로써 한민족의 면면한 역사의 승계를 유지해왔다. 그리고 이제 다시 헌법 전문에 명시됨으로써, 그 의미와 전통을 잇고, 애국지사들의 헌신을 살핌으로써 나라의 아이덴티티를 지키는 일이 중요했다.
김자동은 중후년의 나이로 이 역할을 맡았다. 누군가로부터 떠맡긴 것이 아니고 스스로 맡은 것이다. 국가적 과업이고 가업이기도 했다. 이 땅에서 정부나 기업의 지원 없이는 민족·역사문제의 사업이 쉽지 않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헌법에 명시되고도 십수 년이 지나도록 이렇다 할 사업이 나타나지 않았다. 학자들과 언론사에서는 해마다 임정수립일을 전후하여 학술대회나 기념특집을 연례행사처럼 치르고는 고만이었다.
김자동은 2004년 9월 15일 각계 인사와 학자, 독립운동가 후손과 지인들을 대상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기념사업회를 발족하고 창립총회를 열었다. 회장으로 선임되었다. 맡겠다는 사람이 없었고 맡길만한 분도 없었다. 40여 년 전 민족일보사 사옥 인근인 서울시 중구 태평로 1가 오양수산빌딩에 작은 사무소를 열었다. 창립총회에서 행한 기념사에 의미와 의지가 담겼다.
일본이 패망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주석·부주석 및 국무위원 여러분이 귀국한 지 어느덧 60년이 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 대한민국임시정부 구성원과 기타 애국지사들은 조국광복을 위해 피나는 투쟁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일제의 항복을 받아 이 땅에 진주한 외국군대는 처음부터 임시정부를 승인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 그들의 주도 하에 수립된 정부 역시 임시정부에 관하여 무성의로 일관하였습니다.
87년 대중봉기로 군사정권이 물러나기에 앞서 채택된 헌법에서는, 대한민국정부가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였다고 자처했습니다.
이처럼 새 헌법이 채택된 지 근 20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임정의 업적을 선양하기는 커녕 제대로 조사하는 사업마저 등한히 해왔습니다.
이러한 사태 하에서 뜻있는 각게 인사와 학자, 그리고 애국지사 유족 여러분이 몇 차례 모여, 임정기념사업회를 만들겠다는 결의를 다졌습니다. 비록 출발이 늦기는 했어도, 드디어 오늘 이 자리가 마련되었습니다.
이제부터 임정의 자취를 더듬고, 업적을 발굴 정리하여 후손에게 그 빛나는 역사를 전수하고자 합니다. 여기 뜻있는 여러분이 많이 참석하신 자리에서, 우리 모두의 힘을 합칠 것을 당부합니다.
우리들은 온 몸과 힘을 쏟아 맡은 바 소임을 다하여 여러분의 믿음에 부끄럼이 없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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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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