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와 했던 카톡.
전미경
다른 조카의 대답도 궁금했다. 중2남자. 늦은 밤임에도 톡을 남겼다. 녀석은 의외로 전화를 걸어와 이모를 기쁘게 했다. 바퀴벌레 놀이가 궁금했던 걸까. 평소와 다르게 톡도 잘 받았다.
"만약 이모가 바퀴벌레가 된다면 어떡할 거니?"라고 물었다. "음... 그냥 병에 넣어두고 음식은 제때제때 줄 거예요." "병에 가두다니? 답답하게." 그러자 "그럼 방에 가둘게"라고 했다. 오마이갓! 카프카의 <변신> 속 주인공이 되다니. 그레고르가 떠올랐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던 주인공 그레고르는 하루아침에 벌레가 되어 방 안에 갇힌다. 가족들로부터 소외감, 소통 단절, 삶의 부조리를 겪는다. 간간이 던져주는 음식으로 연명하다 아버지가 던진 사과에 상처 입고 죽는다. 가족들은 슬퍼하기는커녕 귀찮은 존재가 사라졌음에 좋아한다."
카프카의 <변신>을 알 리 없는 조카에게 다시 질문했다. 만약 네 부모님이 벌레로 변한다면? 녀석은 다시 한 번 고민을 한다. "음... 바퀴벌레에서 다시 사람이 되게 하는 기계를 만들 것 같아"라고 대답했다. 부모와 이모를 향한 마음은 이렇게 다른 존재다. 아무리 조카를 사랑해도 나는 방안에 '갇히는' 신세고, 부모는 사람으로 되돌리려 노력하는 존재.
나는 서운함과 씁쓸함을 담아 말했다. "나는 병 속에 가두고, 너무 차이 나는 거 아니니?"라고 했더니 그제야 "이모도 사람으로 바꿔 줄게"라고 한다. 그러나 이미 네 마음은 다 들켜 버렸다.
조카에게 카프카 <변신> 얘길 해주자 '어떻게 해주길 바라?'라고 다시 내게 묻는다. 글쎄, 내가 벌레가 된다면 음... "벌레로 변하기 전에 잘해주렴." 그렇게 말했다. 진심이었다. 나는 벌레가 되고 싶지 않았다. 녀석은 기특하게도 알았다고 했다. 단순한 놀이지만 녀석이 오늘 알게 된 그 마음을 끝까지 가져가 주길 바랐다. 평소 노잼이라던 녀석도 진지했다.
바퀴벌레가 돼도 나를 사랑해줄 수 있나요
바퀴벌레가 된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 질문은 단순히 바퀴벌레의 외형을 말하는 것만은 아닐 테다. 학업, 취업에 대한 불안감, 사회에서의 도태, 소외감, 부적응을 겪을 때 혹은 벌레처럼 존중받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을 때 부모님은 과연 내 편이 되어줄 수 있는지 나를 사랑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의식 같다.
세상 모든 부모님 또한 사랑의 모양이 다 다르니 바퀴벌레 놀이가 유행인 것도 이런 심리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바퀴벌레 놀이는 단순한 놀이 그 이상의 울림과 위로를 준다. 달고나 뽑기 같은 마음의 모양으로.
'벌레로 변해도 사랑해'라는 답 속에 '어떻게 사랑할거야'라는 질문이 추가된다면 선뜻 답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사랑은 조건이 아니다. 그럼에도 어떻게 사랑할지에 대한 의구심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바퀴벌레 놀이는 사랑 외에 다른 그 무엇이 필요한 질문과 답이다. 벌레만도 못한 자식은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질문자가 원하는 감동과 답변자가 주는 위로가 필요한 세상의 조류인지 모른다. 바퀴벌레 놀이가 유행처럼 번지는 이 흐름, 이 현상은.
당신의 마음이 궁금하다. 내 마음을 읽어줄 수 있는지. 바퀴벌레가 되어도 사랑할 수 있나요?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도 존중해 주실 건가요? 바퀴벌레로 변한다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아니, 당신이 바퀴벌레가 된다면 어떻게 할까요? 당신의 마음을 읽고 싶다면, 한 번쯤 질문해 보고 싶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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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바퀴벌레로 변하면?" 이 질문에 열광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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