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로 아들 고 김의현씨를 하늘나라로 보낸 엄마 김호경(58, 수원 우만동)씨가 16일 국민의힘 경기도당사 앞에서 이태원 참사의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을 위해 여당인 국민의힘의 참여를 촉구하고 있다.
정은아
"이태원 참사 200일이 지났는데도 저희 가족의 시계는 10월 29일 새벽 5시 55분에 멈춰 있어요."
이태원참사로 아들 고 김의현씨를 하늘나라로 보낸 엄마 김호경(58·수원 우만동)씨가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우리 아들은 선별진료소에서 일주일에 6일을 근무했어요. 토요일 그날 새벽도 '엄마 다녀올게'라고 말을 하고 갔는데... 그게 마지막 인사인 줄도 몰랐어요."
참사 이후 김호경씨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었다. 호주에서 호텔 부주방장으로 일하던 김의현씨 누나 혜인씨는 동생의 사망소식에 6년간의 호주 생활을 모두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유가족'이 됐다.
"처음에는 사고가 나고 나서 당연히 나라에서 연락이 올 줄 알았어요. 가만히 있다보니 (연락도 없고) 나 혼자만 그냥 고립된 거 아닌가 싶고 참담했습니다."
고 김의현씨는 사고 당일 친구와 함께 이태원을 방문했다가 참변을 당했다. 사고가 있던 골목 끝에 있었던 김현씨는 "나가자"라는 친구의 말에도 "여자친구가 숨을 안 쉰다"는 바로 옆 남자의 울부짖는 소리를 외면하지 못하고 "도와줘야해"라며 현장 속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아비규환의 현장 속에서 기절했던 친구가 정신을 차려보니 의현이가 도로에 쓰러져 있었다고 말하더라고요. 의현이가 죽었다는 사실을 친구 역시 받아들이지 못하고 '더 잡아 끌었어야했다'라는 죄책감으로 지금도 많이 힘들어하고 있어요."
김호경씨는 지금도 아들의 방 불을 여전히 켜놓고, 김씨가 마지막 날 입고 있었던 반바지와 티셔츠를 빨지도 앉은 채 보고싶을 때마다 옷 냄새를 맡는다고 말한다.
"그 옷 냄새를 맡으면 의현이 냄새가 나거든요. 그래서 그것을 아직도 빨지 못하고 의현이 방 안에 향기가 날아갈까봐 창문도 그냥 열지 않고 있어요. 집을 나오고 들어갈 때도 의현이 방 문을 열고 '엄마 갔다 왔어' '갔다 올게' 인사를 해요."
"시간이 200일 전에 멈춰있다"고 말하는 김호경씨의 두려움은 사람들로부터 그날의 일들이 잊히는 것이다.
"'거의 끝나가죠'라는 의현이 친구들의 안부 전화에 가슴이 아팠다. 30년을 함께 한 친구들에게서도 잊혀져가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잊혀질까 두렵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벌어진 전대미문의 참사가 진상규명 없이 잊혀져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김호경씨와 딸 혜인씨는 요즘도 서울시 분향소와 국회의사당 등을 찾아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그리고 이태원참사 특별법 제정을 외치고 있다.
기자와 인터뷰한 16일도 김호경씨는 국민의힘 경기도당 당사 앞에서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제정을 위해 여당의 참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에 함께 했다.
"저는 지난해 10월 29일 이태원에서 발생한 참사로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김의현 엄마 김호경입니다."
마이크를 잡고 말을 이어가는 김씨의 손끝은 떨리고 있었지만, 떨리는 목소리를 잡기 위해 입술을 꼭 깨물며 말문을 이어간 그녀의 발언은 단호했다.
"해가 바뀌고 세 번째 계절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유가족들은 눈물로 호소하고 목이 터저라 대통령의 공식 사과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파면 등 제대로 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지만, 그 어느 것도 이루어진 것이 없습니다. 이태원 참사에 책임을 지고 사퇴한 공직자는 없고 일선 책임자들만 대상으로 진행된 경찰 특수본의 꼬리자르기, 셀프 수사, 허술한 자료 제출과 허위 답변으로 반쪽 자리에 그친 국정 조사는 유가족들이 던지는 수많은 질문에 지금도 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김씨는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책임 있는 사람들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본연의 역할을 다하지 않은 결과 159명의 국민이 목숨을 잃은 사건입니다"라며 "윤석열 정부에서 우리 사회의 중요한 가치들이 무시되고 은폐되는 것을 알리고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데 유가족들이 함께 나설 것입니다"라고 눈물로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