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싱 이후 체성분 분석
이현우
복싱은 시간당 칼로리 소모량이 매우 높은 운동이다. 복싱장마다 '다이어트' 카피 문구를 괜히 건 게 아니다. 체력도 자연스레 증가하고 체내에 축적된 지방을 태워줄 것이다. 물론 성실하게 운동해야 한다는 전제 조건 하에 말이다.
3분 운동, 30초 휴식. 어느 복싱장을 가든 똑같다. 공이 울리고 3분 동안 운동하고 30초만 쉰다. 공 울리는 시간에 맞춰 줄넘기를 하고 샌드백을 치다 보면, 어느새 땀은 비 오듯 올 테고 숨은 가빠질 것이다. 지방을 지키려야 지킬 수 없다. 공 울리는 소리와 함께 지방이 불타는 소리도 함께 들린다.
필자는 비건이다. 지난해 펴낸 <그러면 치킨도 안 먹어요?>에서 비록 작은 대회일지라도 채식인으로서 복싱대회에서 우승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읊조렸다. 그때의 마음은 변함이 없다. 베지터블 파워를 세상에 선보이고 싶다.
하지만 출전하기로 했던 5월 복싱 생활체육대회가 대회사 사정으로 취소됐다. 너무나도 아쉽다. 1~2개월 동안 자주 스파링하면서 훈련에 매진했기 때문이다.
과연 나는 생활체육 복싱대회 트로피를 손에 거머쥘 수 있을까. 다음 대회는 6월이나 7월이 될 것 같다. 더욱 훈련에 매진해서 후회 없는 시합이 되도록 준비해야겠다. 상대의 실력을 가늠할 수 없기에 승패를 함부로 예측할 순 없다. 다만 할 수 있는 건, 비록 상대에게 지더라도 공이 울리는 마지막 순간까지 손을 뻗고 발을 움직이는 것이다. 그럼에도 승리한다면 '올해의 훈장'이 되지 않을까.
복싱은 나 자신과의 싸움이다
복싱은 맨몸운동이기에 발가락부터 머리까지 신체의 모든 부위가 사용된다. 따라서 복싱을 한방 싸움으로 안다면 큰 오산이다. 때리고 맞기만 하는 단순하고 무식한 스포츠도 아니다. 복부, 얼굴 정면, 측면, 턱 여기저기를 때려야 빈틈이 생긴다. 거리도 재고 방어도 해야 한다.
복싱의 기술 수준은 매우 높다. 미국올림픽위원회 소속 전문가 집단은 지구력, 내구력, 힘, 스피드, 유연성, 민첩성 등 10개의 항목을 제시하고 60개 스포츠 종목을 평가했다. ESPN(미국의 스포츠 전문 방송)에서 그 결과를 공개했는데 복싱이 1위에 올랐다. 쉽게 말해 복싱이 가장 힘들고 기술 수준이 높은 스포츠 1위에 오른 것이다.
거의 대부분의 스포츠가 그렇듯 경기가 끝나면 승자와 패자로 갈린다. 그리고 기록이 남는다. O전 O승 O패. '전(戰)'이라는 한자의 의미는 싸움이다. 보통 승자는 기쁨을 누리고 패자는 고개를 떨군다.
물론 경기에 나가서 승리하는 것만이 복싱의 목적은 아니다. 다이어트나 체력 증진 등 복싱을 하는 이유는 각자 다르다. 그럼에도 시합에 나가는 이들은 극히 일부다. 복싱장에서도 모두가 스파링을 하는건 아니다. 저마다 이유가 있겠지만 아마도 패배가 주는 두려움이 가장 큰 이유 아닐까. 패배한다는 것은 분명 두려운 일이다. 누가 패배하고 속 좋게 하하 호호 웃을 수 있겠는가.
복싱은 상대방과의 싸움이기도 하지만 '나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패배하더라도 끝까지 주먹을 던지면서 포기하지 않는 것이 복싱에서 가장 중요하다. 실력이 부족해서 허우적댈지라도 주먹을 뻗어야 하고, 나보다 강한 상대를 만나도 질지언정 등을 보여서는 안 된다. 가드로 주먹을 받아내면서도 무릎을 꿇어서는 안 된다. 체력이 소진된 후 돌덩이처럼 무겁게 느껴지는 주먹을 한번이라도 더 뻗어야 한다.
승부의 추가 이미 기울었더라도 자신과의 싸움은 그때부터 시작된다. 여기서 포기하지 않는다면 후회가 없다. 물론 상대를 이기기까지 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준비한 모든 것을 쏟아내고 링 위에서 내려오는 것만으로 뿌듯한 한판이 된다. 과거의 나보다 성장했다는 느낌으로도 충분하다.
링 위에서만 싸움이 벌어지는 게 아니다. 누가 링 위에 아무런 준비 없이 오르겠는가. 링 위에서 흘리는 땀보다 링 아래에서 흘리는 땀이 훨씬 많다. 다름 아닌 내 안의 게으름은 최고의 적이다. 링 위에 오르기 전에는 수없이 반복하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만 한다.
현실 세계와 복싱 세계관이 거의 일치해보이지 않는가. 내가 사는 세계를 복싱장의 사각형 링으로 옮겨놓은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이런 복싱에 어찌 미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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