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일 계기교육을 하는 모습
이유미
지난 5일 1교시 국어시간, 월요일이지만 내일이 공휴일이라는 사실에 아이들의 표정은 사뭇 들떠있다.
"얘들아 선생님 할아버지는 하늘나라에 가실 때 태극기를 휘감고 가셨어."
현충일을 하루 앞둔 날, 나는 아이들에게 현충일의 의미를 알려주기 위해 다소 뜬구름잡는 소리로 아침을 열었다.
곳곳에서 호기심 어린 눈망울을 가진 4학년 아이들의 질문이 연이어 터졌다. "태극기 달고 하늘로 날아가신 거예요?" 수업 시간에 멍때리기 담당인 OO이가 천진한 목소리로 내게 묻자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선생님 할아버지는 6.25 참전용사셨어." 한마디에 장난스런 분위기가 일순 무겁게 내려앉는다. 먼 얘기라고 생각했던 6.25가 선생님 할아버지 얘기라는 말에 아이들의 표정이 아련하게 바뀌었다.
중학교 2학년 시절, 위암으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게 되신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관이 땅에 묻힐 때 그 위에 덮인 큰 태극기가 아직도 내 뇌리에 선연하다. 그때 처음으로 할아버지가 6.25참전 용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이후 현충일이 매해 돌아올 때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비롯 다른 위인들에 대해서도 그 전보다는 다른 시선으로 애도를 표하게 되었다.
빠듯한 진도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에게 현충일의 의미를 알려주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라 생각해 국어책은 가뿐히 밀어두고 현충일 계기교육을 시작했다. "현충일에는 무엇을 달아야 할까?"라고 묻자, 아이들은 아리송한 눈빛을 보냈다.
하는 수 없이 'ㅈㄱ'라고 초성을 알려주었다. 몇 차례에 걸친 질문에도 답이 나오지 않았고 나는 먹는 생선 중에 비슷한 말이 있다고 하며 대답을 유도했다. 평소 가장 발표를 많이 하는 머리가 긴 OO이가 드디어 정답을 말해주었다.
"조기요!"
당연히 알거라 생각했던 "조기", 요즘 아이들은 생각보다 국경일에 대한 지식이 취약했다. 현충일이 정확히 어떤 날인지에 대해서도 모르는 아이들이 태반이었다. 잠시 머리가 멍해졌지만 지금이라도 제대로 알려줘야겠다 싶어 나는 두 팔을 걷어붙이고 아이들에게 현충일에 대한 지식을 꼭꼭 씹어 삼키도록 열띤 설명을 했다.
나는 현충일을 "나라를 위해 목숨 바쳐 희생하신 위인들의 넋을 기리는 날"이라는 어려운 말 대신 "선생님 할아버지와 같은 주변 할아버지, 아빠들이 여러분과 같은 아이들이 편안하게 살아가게 하도록 용기를 낸 날"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러면서 예전 기사를 찾아, 두 아이의 아빠지만 불길을 무릅쓰고 사람들을 구해내려다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한 소방관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이런 분들도 현충일에 애도를 표해야 할 분이라고 말해주었다. 남일 듣듯 내 얘기를 듣던 아이들이 무엇보다도 두 아이의 아빠라는 말에 슬픈 눈빛을 지어 보였다. 아빠를 잃은 아이들의 마음에 잠시 그 마음을 포개어 보았을 터...
무겁고 딱딱하게만 여겼던 현충일의 의미, 아이들은 선생님의 할아버지 이야기, 어쩌면 친구의 아빠일지도 모를 이야기에서 자신과의 연결고리를 찾는다. 그분이 우리 아빠라면, 우리 할아버지라면 현충일이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어쩔 수 없이 아빠를 잃어야 했던 수많은 아이들을 비롯해 남겨진 가족들은 아마 현충일에 우리 아이들과는 조금 다른 감정으로 맞이할 것이다.
그런 이들의 마음을 감히 다 짐작할 순 없지만 매해 돌아오는 현충일에 잠시라도 그들의 입장에 서서 돌아가신 분들에 대한 애도를 표하는 것. 현재를 평안하게 살아가는 우리가 그들에게 전하는 자그마한 위로가 되지 않을까? 그 작은 마음들은 알게 모르게 그들에게 전해져 좀 더 힘내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아이들은 수업 전과 다르게 사뭇 진지한 태도로 현충일 계기교육에 임한다. "선생님, 훌륭한 분들께 감사 편지 쓸래요." 한 아이의 제안에 나는 아이들에게 배움노트(수업 후 요점정리하는 공책)를 꺼내라고 한 뒤 감사의 한마디씩 적게 하며 현충일의 의미를 되새기도록 했다.
각자 저마다의 마음을 전하며 현충일의 의미를 새기는 작은 손놀림에서 희망을 엿본다.
"선생님 저 내일 조기 꼭 달 거예요, 얘들아 10시에 묵념 꼭 하자."
아빠가 소방관인, 우리 반 제일 장난꾸러기 OO이의 말에 다른 아이들도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왁자지껄한 쉬는 시간을 맞이한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처럼 느껴본, 그 어떤 수업보다 값진 한 시간이 되었기를... 앞으로 아이들이 매해 통과하게 될 현충일이 그전과는 다른 의미로 남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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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중 '태극기 휘감고 가신 할아버지' 이야기를 꺼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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