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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에서 만난 예비 은퇴자들, 모두 힘냅시다

농부의 꿈을 향해 달리는 귀농귀촌인들의 체육대회

등록 2023.06.21 08:02수정 2023.06.21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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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야구 타자가 공을 치고 빠지다가 넘어졌다. 다섯 걸음을 못 갔다. 당연히 아웃이다. 울고 싶은데 웃는다.


"아 몰라 몰라! 난 절대 뛰면 안 된단 말이야아!"

허리 시술 세 번 한 환자다. 웃을 일이 아니다. 이번엔 남자 선수가 힘껏 달리다가 냅다 넘어진다. 릴레이 계주 마지막 주자다. 결승선 코앞에서 넘어져 아픈지도 모르고 벌떡 일어났지만 우승하긴 이미 글렀다. 괜찮냐는 물음에 연신 미안하다는 대답뿐이다.

이날 여러 사람 잡을 뻔 한 건 30도를 웃도는 날씨 때문이 아니다. 마음만큼 몸이 따라주지 않는 중장년들의 열정 때문이다. 지난 주말(17일) 농협대 체육대회에서 벌어진 열정의 순간들이다. 
 
 귀농귀촌과정 학생들의 체육대회 풍경
귀농귀촌과정 학생들의 체육대회 풍경정숙희
 
계주에서 넘어진 학생은 정퇴를 몇 년 앞두고 있다. 은퇴 후 무엇을 해야할지 고민하는 자신에게 아내가 귀농 귀촌 과정에 다녀볼 것을 권했단다.

발야구하다가 넘어진 학생은 24시간 편의점 사장님이다. 알바 구하기도 쉽지 않고 본인이 뛰자니 하루 12시간 이상 일해야 한단다. 몇 년 전 구입해 놓은 손바닥만한 땅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텃밭을 가꾸며 살 날을 위해 토요일 하루를 온전히 투자하고 있다.

50대 초반의 학생은 건강 때문에 귀농을 생각했다. 채소를 직접 길러서 먹으며 오래 살고 싶은데 그러기 전에 죽을 것 같단다. 텃밭 가꾸기가 이렇게 힘든지 몰랐단다. 그래도 절대 포기는 하지 않을 것 같은 표정이다.


50대 중반의 학생2도 아직 기업체에 다니고 있다. 시간적 여유가 없으니 자신에게 배당된 실습 텃밭도 필요없으며, 농업 관련 지식만 얻으면 된다고 한다. 아들을 농업대에 보냈는데 대화 수준을 맞추기 위해 왔단다. 그랬던 사람이 총무직을 맡아 매사에 놓치는 일 없이 열정적이다. 그도 언젠가는 아들의 보조 기사로 조그마한 땅뙈기에서 농사를 지을 것이다.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학생3은 친환경 채소 재배에 진심이다. 남들은 텃밭에 멀칭 한다고 3인 1조가 되어 난리를 피울 때 그는 맨땅에 헤딩하고 있었다. 모종 대신 씨앗으로 승부를 본다고 고군분투 중이다. 


복도에서 마주친 특용작물과 학생은 3년 전에 정년퇴직했다. 평생 기업에서 일을 했지만 좋았거나 보람을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농사는 누구의 지시도 받지 않고 자신만을 위한 일이 될 거라고 믿는다. 그 역시 조그마한 땅뙈기에 그림 같은 농막을 짓고 여생을 안락하게 보내고 싶단다.
 
 귀농귀촌과정 실습 텃밭 풍경
귀농귀촌과정 실습 텃밭 풍경정숙희
 
기후위기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다 해서 우리의 먹거리가 위협받고 있다. 그래서인지 봄이면 주말농장, 도시농부 등 텃밭 접수가 일찌감치 마감된다. 아예 귀농귀촌을 꿈꾸며 공매나 경매, 농지은행 등의 인터넷사이트를 기웃거리기도 한다.

자식들 키우느라 모아놓은 돈이 없으니 손바닥만한 땅을 찾아보지만 어림도 없다. 어마무시한 '평수'와 가격에 입만 벌어진다. 지자체에서도 귀농귀촌 희망자들을 겨냥해 여러 가지 지원정책을 내놓은 지 오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농귀촌해서 농사를 업으로 하는 것이 과연 우리의 최종 안식처가 될 수 있을지 새삼 의문이 들게되는 요즘이다. 농막 관련 정책이 도시민의 '주말농장'에는 불편 없을 것이라 하나, 지방으로 가고자 하는 귀농귀촌의 꿈에는 한 차례 찬물을 끼얹은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도시민의 지방분산은커녕,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우는 일이 되는 건 아닌지 염려스럽기도 하다. 

이날 체육대회에서 함께한 사람들의 땀과 열정에서 그 해답을 찾아보고 싶다. 점잖으면서도 호탕하고 호기심 가득하면서도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솔선수범해서 짐을 나르고, 음식을 나누고, 웃고, 달리고,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질렀다. 

땅은 농부를 배신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처럼, 이들에게 농사는 자신을 배신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엿보였다. 자신이 선택한 미래가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닐 거라는 믿음, 뛰다가 넘어지더라도, 해충으로 피해를 입더라도 내가 선택한 농업이 결코 헛되지 않을 거라는 믿음 말이다. 왜냐하면 내가 스스로 선택했으므로. 어쨌거나 열심히 일한 은퇴자들, 힘냅시다. 아자아자아자!
덧붙이는 글 개인 브런치에도 오픈할 예정입니다.
#귀농귀촌 #은퇴자들 #농협대 #농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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