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광장 주변에 상주하는 경찰차량서울광장에서 진행하는 행사는 달라져도 광장 주변을 둘러싼 경찰차량은 변함없이 존재한다. 차량은 바뀌지만 언제나 4대 이상의 경찰차량이 늘 저 위치에 있다. 대규모 집회가 열리면 광장 가장자리 전체를 경찰버스가 에워쌀 정도로 많아지고 맞은편 덕수궁 앞 차도 역시 경찰버스로 채워진다.
임은희
대규모 집회가 예정되어 있으면, 전날 밤에 펜스를 빼곡하게 설치하는 경우가 많다. 이 지역 주민으로 살면서 가장 불편한 것 중 하나다. 집회 참가자들은 당일 펜스를 만나지만 동네 주민들은 전날 밤부터 펜스 방향을 따라 걸어 다녀야 한다.
펜스를 따라 정해진 길을 지나다 보면 자유 의지를 상실한 것처럼 느껴진다. 펜스를 고정하는 케이블타이에 긁히기도 하면 시민 이하의 대접을 받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어떨 때는 정해진 길로만 가야 하는 죄수가 된 것 같은 기분이다.
다행히 이날 추모제는 펜스를 과하게 설치하지도 않았고 행인과 완벽하게 분리하지도 않았다. 추모제 참가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행진을 준비하고 있을 때 경찰 대부분이 세종대로 사거리로 먼저 이동해 대열을 갖추고 있었다. 주변에서 대기하던 경찰의 수가 현저히 줄었음에도 참가자들은 경찰이 있을 때처럼 행동했다.
행진을 지켜보던 둘째가 물었다.
"그런데 무슨 집회야? 양회동이 누구야?"
"청계천로에 전태일기념관 있지? 전태일은 노동자였는데 일하는 사람들의 인권을 위해 노력하다 몸에 불을 지르고 돌아가셨잖아. 그게 1970년의 일이고, 2023년에는 양회동이라는 노동자가 그렇게 돌아가셨지. 50년이 지나도 노동자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사회에서 비슷하게 돌아가신 분을 추모하는 행사야."
"노동자를 추모하니까, 경찰도 노동자라서 이렇게 많이 왔구나?"
순간 할 말을 잃었다. 12만 명이 넘는 경찰이 나에게는 공권력이었지만 아이의 눈에는 주말에도 출근한 아빠처럼 먹고 사는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시민으로 보였나 보다. 아이에게 집회와 경찰이 많은 시내가 무섭지 않냐고 물었다.
"아니? 1029 분향소 주변에도 경찰이 많잖아. 사람들이 많이 죽어서 슬프니까 지켜주려고 그러는 것 같아."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치받아 올라왔다. 평화롭게 추모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현장을 경찰이 이유 없이 억압하지 않을 것이라는 순진무구한 믿음이 왜 내게는 없을까.
광우병 집회 때 유아차를 끌고 참가했던 수많은 부모들과 참가자를 가차 없이 대하던 경찰들을 본 후에 부모가 되었다. '나도 언제든 집회 참가자가 될 수 있다'는 마음이 강해졌고 경찰은 통제하고 억압하는 이미지로만 기억하고 있었다. 반면 아이는 집회 참가자와 경찰 모두를 아빠와 같은 노동자라는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언론에 나오는 집회 현장의 갈등은 경찰 개인의 판단이 아닌 상급 책임자의 지시에 따른 결과라는 생각을 이날 처음으로 했다. 지시를 이행한 경찰을 비난하기보다는 부당한 지시를 한 책임자를 비판하는 것이 더 어른스러운 사고방식인데, 나는 그동안 충분히 어른스러웠는지를 생각했다.
아이들에게 오늘도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