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북트레일러 유튜브 장면 중 캡처.
열림원
그의 비유와 해석이 시적이면서도 적절해서 오래 음미하게 된다. 어린 시절의 특별한 체험에서 죽음의 이미지를 그려낸 점 또한 인상 깊다. 별 빛 내리는 밤 와글와글 울어대던 개구리 가득한 논두렁에 돌멩이 하나 던지자 일시에 흐르던 정적. 운동회 날 운동장 가득한 축제의 소란스러움과 반대로 텅 빈 교실에서 느껴지는 공백.
생의 한가운데서 스치듯 지나가는 정적과 공백을 순간을 잡아채어 죽음으로 연상하는 노 교수의 감수성이 놀랍다. 죽음이 우리 곁에 언제나 깃들어 있음을 보여주는 깊은 통찰로 보인다. 그는 시시각각 죄어오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드러냈다. 자신의 죽음과 맞붙는 것은 마치 철창을 나와 덤벼드는 호랑이와 상대하는 기분이라고 표현했다. 그 공포가 어느 정도인지 충분히 짐작케 한다.
죽음을 목전에 둔 그에겐 삶의 자세도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음이 분명하다. 무리 속에 안주하지 말고, 방황하고 탐험하며 기어이 '자기'를 살라고 거듭 당부하기 때문이다. 책 많이 읽고 쓴다고 창의성이 나오는 게 아니라며 제 머리로 읽고 쓰라고 강조한다. 고난을 통해서만 인간은 자기의 참모습을 발견할 수 있으니 용감하게 겪어내고 자신만의 스토리텔링을 풍성하게 가지길 권한다.
그 외에도 그는 굵직한 주제들 사이를 거침없이 종횡무진한다. 노 학자의 지적 향연을 따라가기가 버겁다 느낄 때쯤 불쑥 나오는 삶에 대한 회고가 반갑다. 그 회고에서 다행히 그의 인간미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질문 없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열렬히 지적 대화를 나눌 상대가 없어 외로웠다는 그. 강의실은 늘 수백 명으로 꽉꽉 찼지만 스승의 날 꽃을 들고 찾아오는 이는 없어 섭섭하고 외로웠다는 그였다.
암 때문에 글을 쓰지 못해 고통스럽다는 고백도 애잔하다. 죽음에 직면하여 평소 얘기했던 '메멘토 모리'를 감각화 할 기막힌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모든 지식과 생각을 암이 지워버려 머릿속이 그저 대낮처럼 하얘졌다고 실토한다. 무심히 드러낸 평생의 외로움과 죽음 앞의 무력함을 표하는 노 교수의 이면이 쓸쓸하게 읽히는 지점이다.
김지수 기자는 프롤로그에서 이성복 시인의 말을 빌어 스승이란 생사를 건네주는 사람이라고 했다. 이어령 교수는 평소 그답게 생과 사에 관한 자신만의 답들을 자신만의 색깔로 전해주고 있었다. 앞서 읽은 모리 교수의 말은 언 땅을 녹이듯 온기로 자연스레 독자에게 스며든다면, 이어령 교수의 말은 시적이면서도 때론 단호하게 내려치는 죽비처럼 독자의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든다.
시대의 지성으로 한 시대를 구가한 이어령이란 학자의 마지막 말이 궁금한 분들에게 권한다. 고난 속에서 자신만의 질문과 답을 찾느라 치열하게 고민하는 분들에게도 권한다. 죽음과의 팔씨름이란 대가를 치르며 남긴 노 학자의 지적 통찰에서 필요한 영감과 위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 시대의 지성 이어령과 ‘인터스텔라’ 김지수의 ‘라스트 인터뷰’
김지수 (지은이), 이어령,
열림원,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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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지성' 이어령 선생이 죽음에 대해 남긴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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