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빈 천일염 진열대서귀포시 성산읍 365식자재마트 소금 진열대에서 천일염은 자취를 감췄다.
이봉수
첫째는 천일염 품귀 현상이 특히 제주에서 극심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6월 30일 성산읍 365식자재마트와 하나로마트 등을 둘러본 결과, 천일염은 판매대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성산읍에서 식당을 운영한다는 60대 여성은 천일염 대신 조그만 맛소금 몇 봉지를 사면서 일본의 핵오염수 방류를 걱정했다.
"이런 날벼락이 없습니다. 금은 돈 주면 살 수 있지만 천일염 소금은 돈 주고도 못 사니… 이러다가 김장은커녕 겉절이도 못 담그게 생겼어요."
제주는 갈치소금구이 같은 수산물 요리와 젓갈·고등어자반 등 수산물 가공에 이르기까지 소금 소비가 특히 많은 곳이다. 제주 해안가에 줄줄이 들어 서 있는 양식장도 엄청난 바닷물을 끌어다 써야 한다. 제주의 대부분 산업은 바다와 연관된 것이어서 바다의 청정 이미지가 훼손되면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반면 제주는 갯벌이 형성되지 않아 갯벌 천일염은 생산하지 못한다. 육지에서 들여오더라도 무게가 많이 나가 만만치 않은 수송 비용이 추가된다.
제주에 온 벼슬아치들의 소금 걱정
제주에서 소금의 중요성에 관한 인식이 얼마나 뿌리깊은지를 육지 사람은 거의 이해하지 못한다. 기묘사화로 제주에 유배됐다가 사약을 받은 김정은 <제주풍토록>에서 '서해처럼 전염(밭소금)을 만들자고 해도 만들 땅이 없다'고 썼고, 1601년 반란음모사건을 위무하러 제주에 온 안무어사 김상헌은 <남사록>에 제주에서 생산되는 소금은 관가에 공급되지만 민간에서는 쓸 수 없다고 기록했다. 제주목사 이원진도 <탐라지>에 소금이 귀한 이유를 밝혔다.
'해안가는 모두 암초와 여로 소금밭을 만들 만한 해변의 땅이 매우 적다. 또한 무쇠가 나지 않아서 가마솥을 가지고 있는 자가 적어 소금이 매우 귀하다.'
암반 위에서 '돌소금' 만들어야 했던 절박함
그러나 궁하면 통하는 법. 명종 때 대정현감, 선조 때 제주목사가 된 강려(姜侶)는 해안가 평평한 암반 위에 둑을 쌓아 돌소금을 만들게 했다.
그 현장을 복원해 놓은 곳이 '소금빌레'로 불리는 '구엄리 돌염전'이다. '빌레'는 '박힌 돌 또는 '너럭바위'를 뜻하는 제주어다. 내 단골식당 이름이 '빌레와 너드랑'인데, '너드랑'은 '널브러진 돌'을 뜻하는 경상도어다. '박힌 돌' 제주 여자와 '굴러온 돌' 통영 남자가 만나 백년해로하고 있어 식당 이름을 그렇게 지었단다.
큰딸에게만 상속했던 '돌염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