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하나 작가 북토크
이혁진
책 제목은 다소 도발적이다. 탈북민 자신의 정체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강하나 작가는 제목과 달리 주목을 받지 못해 한때 제목 변경도 고심했지만 지금은 '친근한' 북한댁 호칭이 좋다고 한다. 또래 친구가 북한 사투리를 쓰는 자신을 부를 때 스스럼없이 '북한댁'이라 불러주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책 작명은 친구가 지어준 셈이다.
'남남북녀 주인공' 또 다른 '사랑의 불시착'
사실 이 책은 작가 자신의 두 자녀에게 전하는 이야기다. 이는 책을 지은 동기이기도 하다. 애들이 커가면서 '엄마는 누구인가'에 대해 질문할 때마다 머뭇거리곤 했다. 아니 자신이 북한 출신이라는 것을 숨기고 싶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를 회피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용기를 냈다. 북한에서 태어난 자신의 정체성과 북한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당당히 들려주었다. 이후 아이들에게도 떳떳했다.
강 작가는 지난 1999년 겨울 북한에서 배고픔을 면하려고 중국으로 탈출했다. 고난의 행군시절 중국에 가면 적어도 굶주리는 사람은 없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중국에는 먼저 탈북한 엄마가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그는 중국에서 대한민국에 올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그는 중국에서 자유라는 걸 어렴풋이 깨닫기 시작했다고 한다.
작가는 인터넷을 통해 남편과 채팅하며 사귀었다. 인터넷 펜팔은 2006년 결혼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한국에 오기까지 긴장과 불안의 연속이었다. 대한민국 군인인 남편에게 자신이 탈북출신이라는 걸 끝내 밝히지 않았다. 신분을 밝히면 한국행이 어려울 수 있고 예비 남편에게도 불리하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남남북녀'로 만난 이들의 사랑은 거침이 없었다. 남편의 믿음과 끊임없는 구애가 있었지만 작가는 "남편을 찾아 목숨 걸고 한국에 온 사람"이라 표현했다. 중국당국으로부터 결혼비자를 얻기 위해 인터뷰할 때 느낀 북송의 위험과 불안은 지금 생각해도 끔찍한 순간이며 '미친 짓'이었다고 회고했다.
작가 남편이 군인이기에 이들은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군인인 남편을 선택한 건 고향 청진에 있을 때 군인들에 대해 가진 호감도 한몫했다. 어릴 때 군복 입은 키 큰 군인 아저씨들은 추울 때마다 따뜻하게 해 주고 인민들에게 친절했다고 한다.
자유를 만끽하고 자본주의의 '쓴맛'을 보다
대한민국 사회에 적응하는데 남편은 자신에게 그야말로 '전부였다'라고 말했다. "궁금하고 모르는 것의 거의 전부를 남편이 해소해 주고 길라잡이 역할을 했다"라고 강조했다. 탈북해 정착하는데 처음 만나는 사람에 따라 향후 적응환경이 달라지는데 자신은 훌륭한 남편을 만나 정말 행복하다고 말했다. 아직도 현역으로 근무하는 남편은 이날 북토크 현장을 직접 찾아 아내에게 "사랑해'라며 응원을 보내기도 했다.
한국에 적응하는데 남편뿐 아니라 주변의 도움도 컸다. 최전방 군인아파트에 살더라도 군인가족들과 이웃들이 늘 감싸주었다. 이질감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유대감도 넓혀갔다. 혹시 북한 사투리와 말투로 오해를 살 경우에도 '괜찮아'라는 말로 위로해 주는 이웃들이 너무 좋았다. "안돼? 왜 그래?" 소위 '답정너'만 요구하는 북한사회와는 전혀 다른 세상을 접한 것이다.
작가는 "한국사회의 자유를 찾아왔는데 처음엔 이 뜻을 언뜻 이해하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북한사회의 폐쇄성에 길들였다가 자유를 만끽하자 잠시 공황상태를 경험했다는 것이다. 마치 서커스단의 코끼리가 울타리를 벗어났다고 해서 자유롭기는커녕 불안해하고 방황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작가는 특유의 친화력으로 한국에 누구보다 잘 적응했다.
자유에 대한 에피소드 하나 더, 직업군인 남편 따라 자주 이사하는 편인데 북에서는 군인들이 이사하는 이전의 자유가 거의 없다. 남한에 이사할 자유가 이렇게 자주 보장되다니 처음엔 되레 불안했단다. 그리고 북과 멀리 떨어져 살고 싶어 북을 탈출했는데 돌고 돌아 정착한 곳이 북이 가까운 최전방이라니 이 또한 아이러니하다는 것이다.
책에도 언급하지만 작가는 한때 '자본주의 꽃'이라는 보험영업에 뛰어들었다. 북에서는 자본주의가 '썩어빠진 세상'이라고 배웠지만 아프면 돈을 대신 내주는 보험이 매력으로 다가왔다. 북에서 '생활총화' 하듯 말을 잘하면 영업도 잘될 것 같았다. 실제 보험 판매하는 탈북인들이 제법 많다고 한다. 하지만 영업 마인드가 부족해 결과는 참담했다. 작가는 이때 자본주의 '쓴맛'을 제대로 경험했다며 비싼 수업료를 지불했다고 한다.
'남북한 이해하기' 갈 길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