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교육청 앞에 초등교사들이 보낸 트럭이 서 있다. 2023.7.21
연합뉴스
교육청과 교원노조 간의 협약에 의거, 학부모는 업무 시간 외에 교사에게 연락할 수 없도록 함으로써 교사의 사생활을 존중한다는 것 또한 차이가 난다. 이를 어기고 학부모가 교사에게 업무시간 외에 지속적이고 교사가 원치 않는 방식으로 접촉할 경우 교사는 이를 교원노조에 신고하고, 교원노조 소속 변호사는 교장과 교육감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적절한 조치를 요구한다.
대개의 미국 학교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한 가지 분명한 원칙은, 학부모의 민원을 받은 교사가 직접 학부모와 접촉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점이다. 교사의 임무는 학부모 민원의 내용을 교장에게 전달하는 것이며, 학부모와의 대화, 나아가 법적인 사무는 교장의 업무라는 것이다.
더불어, 교사가 학부모의 민원 때문에 겪는 어려움에 대해 말하고 싶으면, 교장이 나선다. 교장이 동료 교사 그룹과의 대화를 주선하거나 교장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교사가 겪는 어려움을 청취하고 학교와 교육청 차원에서 도울 방법이 있는지 찾는다. 간단히 말해, 괴롭힘에 가까운 학부모의 과도한 민원을 교사 혼자 짊어지게 하는 일은 없다는 점이다.
건축설계 등 리모델링까지 교사 업무
모두가 부러워하는 임용 시험을 통과한 대한민국 교사들이 겪는 실상은 밖에서 보는 것과 달리 살인적인 행정 업무량과 학부모 민원에 학교폭력 처리까지 도맡느라 녹록지 않다. 맡은 행정업무가 뭐냐고 미국 교사들에게 물으면 대개 의아해한다. 행정업무는 교장, 교감 또는 담당 업무를 맡은 직원들의 몫이지 교사인 자신은 가르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한국의 교사는 다르다. 급식비 수납 독촉, 교육행정정보 시스템 관리, 업무포털 예산안 입력, 체험학습 안내 학부모 문자 발송, 학부모 민원 상대, 영문 재학증명서 번역, 학적부 관리, 동창회 업무, 전·출입 업무, 학교폭력 건수 발생 현황 교육청 보고, 국회 요구자료 제출 등이 모두 교사의 업무이다.
국회 국정감사가 다가오면 국회의원 요구자료 요청이 쏟아진다. 이들 요구의 특징은 서너 시간 안에 관련 현황을 파악하여 공문서로 제출하라는 것인데, 해당 업무를 맡은 교사가 학교 전체 교사로부터 관련 자료를 제출받아 공문서로 서너 시간 안에 제출하라는 것은 수업을 포기하라는 요구와 다르지 않다.
교사가 과도한 행정업무를 맡은 또 다른 예가 있다. 2010년대 초 교육부는 교과교실제라는 제도를 도입했다. 해당 사업에 선정된 학교의 교실을 국어교실, 영어교실 등 교과의 특성에 맞게 리모델링하는 사업인데, 놀랍게도 건축설계, 소방, 전기, 배관, 페인트 작업, 가구 및 컴퓨터 구입 등에 전문성이 있을 리 없는 전국의 교사들이 각 학교에서 이 업무 담당자로 투입되어 일했다. 이 모든 일은, 행정업무를 위해 승진 및 고용된 교장, 교감, 행정직원의 업무가 되어야 마땅하다.
우리나라 교사들이 행정업무, 학부모 민원 및 학교 폭력 등으로 다른 나라 교사들에 비해 과도한 부담을 지고 있다는 사실은 국제 교육통계에도 드러난다. 2019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간한 교수학습 설문조사(Teaching and Learning International Survey) 보고서에 의하면 스트레스 요인으로 "수업 준비"를 꼽은 한국의 초등교사는 8.9%에 그친 반면, "행정업무(42.4%)" 또는 "학부모 민원 응대"(48.3%)를 꼽은 초등교사는 그 5배에 이른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학생으로부터의 협박이나 언어 폭력"이 업무 스트레스의 가장 큰 요인이라고 답한 교사가 21%로, 조사대상 18개국 중 1위를 차지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