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이오면' 서점의 과거와 현재를 말하는 김동운 대표
최기원
1980년대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에 몸을 던졌던 청년 유정희·김동운 부부는 1990년대에 신림동에 정착해 '그날이오면'을 인수해 인문사회과학서점 운영을 시작했다. 연세대의 '오늘의책', 고려대의 '장백서원', 성균관대의 '풀무질' 등 대학가 인문사회과학서점들은 민주화 전후의 학생운동과 더불어 성장했다.
김동운은 당시 서울대 앞 인문사회과학 서점들이 이른바 NL과 PD 정파로 나뉘어 다른 생각을 담은 서적들을 다루지 않고 서로 교류하지 않음에 문제의식을 느꼈다고 했다. 그래서 '그날'을 생각을 구분짓지 않은 너른 공간으로 만들고자 했다. 작은 차이에 집착하지 않고 큰 뜻에 목표를 두어 함께 하고자 한 태도가 오랜 풍파를 이겨낼 수 있었던 원동력 중 하나였다고 김동운은 평가했다.
1996년에 큰 사건이 있었다. 불온서적을 다룬다며 국가보안법 혐의로 서점이 압수수색을 당하고 유정희·김동운 부부가 남영동 대공분실로 연행된 것이다. 서울대 학생들 400여 명이 대공분실과 서점 앞에서 항의와 응원의 뜻으로 집회를 열었다. 김동운은 풀려났으나 유정희는 구속되어 징역을 살았다. 이 때 김동운은 결코 여기를 떠나지 않고 학생들과 함께하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한다. 김동운은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활동에 지금도 꾸준히 앞장서고 있다.
2000년대 중반부터는 서점의 경영이 크게 어려워졌다. 학생운동은 퇴조하고, 인문사회과학서적의 수요가 줄었다. 후원회를 조직하기도 했지만 어려움은 해소되지 않아 2017년에는 임대료가 낮은 길 건너 골목 안쪽으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어려움 속에서도 강연회, 저자와의 대화, 심야책방 등 학생사회와 지역사회와의 교류는 꾸준히 지속했다. 그리고 2023년 7월, 드디어 서점이 태어났던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게 됐다.
서점 안쪽에는 '그날이오면'이라 쓴 서예 액자가 걸려 있다. 2006년 고 신영복이 '그날' 주최의 강연을 수락하며 희사한 것이라 했다. 신영복은 '그날이오면'의 가치를 두 단어로 표현했다. '씨 과일은 먹지 않는다'는 석과불식(碩果不食), 그리고 잎사귀를 떨구어 거름으로 삼는다'는 엽락분본(葉落糞本)이다. 눈앞의 쓸모보다는 미래를 예비하며 몸을 다해 사회의 양식을 일구는 자세, 김동운이 말하는 '그날' 정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