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승 작가의 신간 <술래바꾸기> 본문 중(출판사 제공)
낮은산
- 책에서 중요한 대목 중 하나가 "보이지 않지만 큰 기척 없이 이 세계의 작고 약한 것들을 연결하는 데 기여하는 이들이 떠올랐다. 그들 대부분은 시적이고 윤리적인 조건으로 관계 맺고 유동적인 몸으로 비인간, 사물과 만난다. 내게는 몇몇 여성노인들이 그런 존재로 남았다"는 부분이에요. '윤리적인 조건으로 관계를 맺는다'는 말은 어떤 의미일까요.
"저는 윤리라는 것이 관계 속에서 늘 유동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어떤 사람을 만나면, 내게 어떤 위치가 주어지고, 그 사이에서 윤리가 발생 되는 거죠. 윤리에 대해서 말을 한다면 어떤 관계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전제 조건이 필요할 것 같고요.
타자도 마찬가지예요. 내가 타자를 내 이해의 범주 안으로 끌고 오는 것이 폭력인데요, 그보다는 어떤 관계는 이해 불가능의 영역에 두는 것이 훨씬 나아요. 그저 나와 같은 세계를 사는 사람으로 존중하는 거지요.
(책에 등장하는) 여성노인들을 뵈러 갈 때에도 내 기준에서 평가를 안 하려고 노력했어요. 현실적으로 여성노인들은 이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분들이에요. 수명은 남성 노인보다 8~9년이 길고 만성 질환도 남성 노인들보다 훨씬 많아요. 여기에 돌봄 노동까지 해야 해요.
그런데 저는 여성노인들과 만나면 실컷 웃다가 오거든요. 그분들의 삶은 내가 판단할 수가 없는 거예요. '여성노인들이 엄청 힘들겠다'고 생각하지만 저는 웃기지 않은 할머니를 본 적이 별로 없어요. 인생의 끝에 요양원을 가는 것이 비참한 일인 것처럼 많이들 말하는데 이들은 요양원 안에서도 웃어요. 우리는 어떤 세계를 너무 모르는 거예요.
내가 두려우니까 타자화해서 제대로 안 보려고 하고 그저 내가 그 가난한 노인만 안 되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우리는 높은 확률로 가난하게 살아요. 그렇다면 그 나이의 삶을 좀 재밌게 살 수는 없을까. 우리는 그걸 여성노인한테 배울 수밖에 없는 거죠."
- 책에서 일어난 사건들의 시공간이 분명하지 않은 느낌이에요. 그러니까 이게 2010년대의 일인지 1990년대의 일인지. 그리고 한국인지 외국인지가 분명하지 않아요. 그리고 실재하는 사건인지도 잘 모르겠어요. 혹시 의도한 걸까요.
"글에 따라서는 시공간이 굉장히 중요한 배경이 되기도 해요. 그러나 아픈 몸이라는 건 일상적인 시공간의 문법을 벗어나 있어요. 남들 출근할 때 출근 안 하잖아요.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며칠인지 중요하지 않아요. 기억은 반드시 선형적인 시간과 특정 공간 안에서 머물러 있지 않아요. 어디에 있든 내가 있는 곳이 아픈 곳이고 있는 시간이 아픈 시간이에요.
<짐승일기>를 소설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계셨던 터라 <술래바꾸기>는 어떻게 읽으실지 궁금해요. 책을 쓸 때 특정한 장르를 염두에 두고 쓰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술래바꾸기>는 에세이인 것 같아요.
에세이의 어원인 프랑스어 동사 'essayer(에세이예)'에는 '시도하다'나 '경험하다', '한 번 시험 삼아 해보다' 같은 의미가 있어요. <술래바꾸기>는 삶의 이질적인 요소들과 관계 맺기를 시도해보는 책이에요. '세대도 다르고 인종도 다른 존재들을 한 번 연결해볼까' 시도했고, 장르로 분류하자면 에세이로 볼 수 있어요."
김지승 작가는 실제로 <술래바꾸기>에서 세대가 다르고 인종이 다른 존재들을 연결한다. 사회적 약자로 분류되는 이들은 <술래바꾸기>에서 자신만의 목소리를 가진 주체로 다시 태어난다. 책 <술래바꾸기>를 들어 책표지를 넘기면 저자 소개가 나온다. 저자 소개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김지승. 읽고 쓰고 연결한다."
술래 바꾸기
김지승 (지은이),
낮은산,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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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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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가 책 마지막 문장을 '듣고 있다'로 끝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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