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대전 시청 건물한국전쟁 당시 '대전 시청' 건물. 현 중구청 구관
정병진
대전지역 학살의 출발점
이날 우리 답사팀은 목사, 신부, 전도사까지 모두 아홉 명이다. 멀리 제주와 강원 원주, 강화, 의왕, 대구, 여수 등 전국에서 모였다. '국가폭력과 기독교'라는 주제에 관심 있는 기독교 성직자들의 작은 모임이다. 모인 곳은 대전 옛 중구청이다. 첫 모임 장소를 왜 이곳으로 정했는지는 모임을 제안한 최태육 박사(전 진실화해위원회 조사관)의 설명을 듣고야 알았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한국전쟁 당시 현 중구청 구관 건물은 '대전시청'이었다. 1950년 6월 28일, 바로 이 대전시청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국무회의를 열고, 무초 특사(주한특별대표부)와 회담을 했으며 긴급명령 제1호를 발표했다. 또한 시청 뒤편에 방첩대(CIC: Counter Intelligence Corps)가 있었고 시청 건너편에는 중부경찰서에 헌병사령부가 있었다.
우리는 오늘 대전 산내 학살지를 둘러보기로 했다. 그런데 어째서 옛 중구청에 모여 답사를 시작했는지 비로소 이해했다. 한국전쟁 직후 대전지역 모든 학살의 출발 지점이 바로 이곳이기 때문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당시 대전시청에서 긴급명령 제1호(비상사태에 있어서의 반민족적 또는 비인도적 범죄를 엄중 처단)를 발표한 뒤, 김창룡 대령에게 군검경합동수사본부 설치를 지시했다.
1950년 7월 11일 치안국이 보도연맹과 예비검속자 처형 지시를 전국 각 경찰서에 하달한 곳도 바로 옛 대전시청(현 구 중구청)이었다. 건물 외관만 봐서는 평온하고 고풍스러운 관공서쯤으로 보인다. 하지만 실은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유족들에게 오랜 세월 피눈물을 안긴 곳이라니 그냥 봐선 실감하기 어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