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7년경 연해주 한인촌 모습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
그러나 연해주 의병은 놀랍게도 1908년부터 몇 차례 두만강을 건너 공격했고, 국내 의병부대와 연계하여 의병투쟁을 벌였다. 이들은 한인촌에 유숙하면서 군사훈련을 받았으며, 참모진은 러시아 당국과 교섭하여 러일전쟁 때 사용했던 러시아 군대의 폐총을 구매하는 일과 청국 훈춘(琿春) 당국에도 무기 공급을 교섭하였다.
양국은 일제의 강력한 항의에 따라 이를 거절했지만 무기상을 통하여 총기를 구입하고, 동포들이 소지하던 총기를 거두어 무장하니 7백여 명의 의병이 러시아제 5연발 소총 500정에 1인당 100~150발의 탄환으로 무장할 수 있었다.
대한의군 의진을 보면, 총독에 이범윤, 총대장에 김두성(金斗成, 유인석 가명), 대장에 전제덕(全濟德, 전덕원 가명)·김영선, 영장에 안중근·엄인섭·백규삼·이경화·김기룡·장봉한 등이었고, 최재형이 군자금 조달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주도자였다.
막대한 재산으로 반일무장단체 독립단 이끌다
1910년 12월 러시아 연해주에 거주하던 최재형, 이종호, 오주혁, 황병길 등은 연추에서 국민회(國民會)를 조직하였다. 국민회 설립 목적은 해빙기에 학교를 설립하여 인재를 양성하고, 국권을 회복하자는 취지였는데 최재형이 회장, 이종호가 부회장을 맡아 활동하였다.
이어 1911년 5월 이종호, 김익용, 강택희, 엄인섭 등이 주축이 되어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에서 권업회(勸業會)라는 이름의 반일활동 단체를 조직하였다. 회장에 최재형, 부회장에 홍범도가 선임되어 <권업신문>이라는 기관지를 발간했는데, 연해주에 사는 독립운동가들이 대부분 가입했기 때문에 규모도 상당했다.
창단 3년째인 1914년에는 회원이 8500여 명에 이를 정도로 세력이 확장되어 연해주의 대표적인 반일활동 단체로 부각되었다. 처음에 러시아 정부의 공인을 받고 조직되었으나,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러시아와 동맹국이 된 일본의 항의로 1914년 강제 해산당했다.
1917년 볼셰비키혁명이 일어나고, 연해주에서 볼세비키혁명군인 적군(赤軍)이 일본군의 후원을 받은 백군(白軍)과 내전이 벌어지자 최재형은 이를 계기로 적군을 지원하는 반일무장단체 독립단(獨立團)을 조직하여 단장을 맡았으니, 곧 독립군 대장으로 활약하게 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