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과 퇴직급여 비교국민연금과 퇴직급여 비교
정재철
필자가 생각하기에 퇴직금 전환금 폐지는 당연한 수순이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국민연금과 퇴직급여는 달라도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표>은 국민연금 보험제도와 퇴직급여를 간략히 비교 정리한 것인데 이 중에서 주요 특징 중심으로 간략히 살펴보자.
재정재계산제도와의 연관성에 중점을 두고 살펴보면 가장 두드러진 차이는 성격과 실질소득 보장방법, 소득 대체율 계산 등이다. 먼저 국민연금은 헌법 및 사회보장기본법 등의 생존권 규정을 간접적으로 반영하여 국민생활 및 복지향상을 위한 중요한 수단으로 전 국민을 대상으로 강제가입의 형식이지만 퇴직급여는 생활자기 책임의 원칙에 근거한 임금 혹은 공로에 대한 보상의 성격을 갖는다(➀,➁).
다음 제도의 성격을 보면 국민연금제도는 노령·사망·장애 등의 사고에 대비하고 동시에 평균수명보다 더 오래 살게 살 장수위험에 대비한 보험제도다. 이에 반해 퇴직급여는 후불임금(지연된 임금)으로 공로보상적인 저축제도다(③). 부담은 국민연금은 근로자와 사업주가 공동으로 절반씩 부담하지만 퇴직급여는 후불임금이기 때문에 사업주만 부담한다(④).
그리고 국민연금은 재평가제도를 통해 연금을 수급하기 시작할 때부터 노후의 실질소득을 보장하고 이후에는 매년 물가상승률을 적용하여 노후의 실질소득을 보장한다. 따라서 종전소득에 대한 소득 대체율을 계산할 수 있다. 이에 반해 퇴직급여는 재평가제도도 물가슬라이드도 없기 때문에 종전소득에 대한 소득 대체율을 계산할 수 없다. 단지 납부한 기여금 총액과 퇴직급여 총액 사이에 보험 수리적 균등관계가 확보되도록 약정했던 운용이율을 적용할 뿐이다(⑤,⑥,⑦). 이것도 높은 수수료를 떼고 나면 실질적으로 남는 게 없다(⑨).
보장기간도 국민연금은 종신으로 보장하며 유족연금의 형태로 계승되지만 퇴직급여는 기간을 정해 지급하고 본인이 사망하면 계승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퇴직급여에 소득공제를 주는 것은 제도 가입을 장려하는 취지도 있지만 국민연금의 소득 재분배에 참가한 중간층 이상의 소득자에게 일정의 범위 내에서 주어지는 혜택으로 생각해야 한다. 따라서 이러한 우대 조치를 '부자 우대'라고 비판하면서 폐지하자라는 주장은 소득재분배 기능과 사적 연금의 역할 분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에 나온 거라고 봐야 한다.
이상에서 살펴봤듯이 목적과 기능 역할 등에서 퇴직급여와 국민연금은 확연한 차이가 있어 서로가 대체관계라기 보다는 보완관계로 바라봐야 문제를 풀 수 있다. 그럼에도 최근 재정재계산 논의과정에서 보여지는 퇴직금 전환제의 부활 주장은 다시 원점에서 재검토 되어야 한다.
OECD가 발행하는 'Pensions at a Glance'(연금 한눈에 보기)에서는 공적 연금의 소득 대체율이라는 개념에 사적 연금도 포함된 수치가 기재되긴 한다. 그런데 사적 연금에 모든 사람이 가입할 수 있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적 연금에 근로자의 40% 이상이 가입해 있다는 이유만으로 사적 연금을 포함한 소득 대체율을 계산하여 공표하는 것은 상당히 부적절하다.
스웨덴이나 네덜란드에서는 사적 연금이 근로협약 체결 시 모든 근로자를 가입 대상으로 하여 소득비례연금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기 때문에 사적 연금을 포함해서 계산하는 것은 일정 정도 의미가 있을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사적 연금에 저소득층이 가입할 수 없기 때문에 사적 연금을 포함한 소득 대체율을 계산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신중히 판단할 필요가 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퇴직급여는 임금이나 물가에 연동하지 않아 임금에 대한 소득 대체율을 계산하면 논의가 산으로 갈 수 있다(독일 리스터연금 제외).
퇴직급여는 노동시장과 공적 연금의 '가교역할'에 집중하자
이상에서 본 것처럼 국민연금과 퇴직급여는 달라도 너무 달라 국민연금의 재정재계산 논의에서 제외시켜 100세 시대를 준비하는 공적 연금과 사적 연금 간의 역할 재정립 방안의 틀 안에서 활성화를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앞서 살펴본 대로 퇴직급여에는 실질적인 노후소득을 보장할 방법도 없고 거의 대부분이 유기연금이기 때문에 취업활동과 더 높은 소득 대체율을 확보할 수 있는 연기연금 사이의 가교 역할에 특화하도록 자리매김해야 한다(<그림>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