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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기물 오염지 위 학교, 제 자녀가 그곳에 다닙니다

대기업과 해군에 책임 묻기까지 40여 년... 일본 오염수 방류, 걱정됩니다

등록 2023.08.31 12:07수정 2023.08.31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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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역사지구 표지판 - 그루먼사와 아폴로 달 착륙선 아폴로 우주선의 출발지이며 달 착륙선이 만들어진 곳임을 알리는 기념표지. 현재는 그루먼사가 물러나고 다른 회사들이 들어선 상업지구이다. 인근에 축소규모의 노스롭그루먼사가 있다.
지역 역사지구 표지판 - 그루먼사와 아폴로 달 착륙선아폴로 우주선의 출발지이며 달 착륙선이 만들어진 곳임을 알리는 기념표지. 현재는 그루먼사가 물러나고 다른 회사들이 들어선 상업지구이다. 인근에 축소규모의 노스롭그루먼사가 있다. 장소영

미국 노스롭 그루먼(Northrop Grumman)사는 미국의 4대 방위 산업체 중 하나인 대기업이다. 노스롭과 그루먼, 두 회사가 합병하기 전 그루먼사는 2차대전과 냉전시대에 걸쳐 기술혁신을 이룬 무기와 우주 산업으로 승승장구하던 기업이었다.

그루먼 F계열의 함재기(항공모함 탑재 전투기)들은 일본에 있어 공포의 대상이었고, 이후 소련과의 우주 전쟁 시대에 아폴로 우주선의 달 착륙선을 만들기도 했다. 덕분에 그루먼 사가 위치했던 맨해튼 동쪽의 큰 섬 롱아일랜드는 미국 우주항공사에 중요한 모태가 되었고, 롱아일랜드 항공우주 박물관 정식 이름 역시 Cradle of Aviation(항공요람 박물관)이라고 한다. 

달 착륙선 만들어진 섬 롱아일랜드, 이 곳의 그늘 

항공요람 박물관의 또 하나 자랑스러운 기록물이 있다. 미국 뉴욕에서 프랑스 파리로, 대서양 첫 단독 횡단 비행에 성공한 조종사 린드버그가 날아오른 곳도 롱아일랜드다. 1927년 5월 20일 그가 파리를 향해 출발한 날을 기념해 항공요람 박물관도 5월 20일에 개장을 했다.  
 
베스페이지 입구의 환영 표지 역사적인 우주탐사개발지역이며 영화제작지역임을 알리는 마을입구의 표지. 간혹 달 탐사 모듈(Lunar Excursion Module)을 뜻하는 Home of LEM 표지판을 보기도 한다.
베스페이지 입구의 환영 표지역사적인 우주탐사개발지역이며 영화제작지역임을 알리는 마을입구의 표지. 간혹 달 탐사 모듈(Lunar Excursion Module)을 뜻하는 Home of LEM 표지판을 보기도 한다. 장소영

롱아일랜드 지역 중 특히 베스페이지(Bethpage)는 그루먼사가 소유했던 넓은 부지에서 아폴로 달 착륙선이 만들어진 역사적인 동네이다. 

우주항공 사업이 쇠퇴하면서 부지 일부를 매각했고, 함께 세계대전과 우주전쟁을 주도했던 해군 시설이 이전하면서 지금은 스파이더맨을 비롯한 영화 촬영, 제작지와 베스페이지 주민 공원(Bethpage Community Park)이 들어섰다. 주민 공원은 널찍한 놀이터는 물론 아이스링크, 공영 야외수영장, 농구장, 테니스장, 롤러스케이트-보드 경기 연습 시설 등 규모가 제법 크다. 

문제는 그루먼사와 해군이 철수하면서 땅 속 깊이 파묻거나 버린 폐기물이다. 주민 공원을 화학폐기물로 오염된 땅 위에 세운 셈이다. 오염 지역 내에 위치한 공립 초·중·고등학교만 합쳐서 8개다. 안타깝게도, 필자의 자녀도 그중 한 곳에 재학 중이다.   

해군 병기창을 비롯해 군수 용품을 다루던 곳은 롱아일랜드에만 45군데이고, 그중 비공개 폐기물 매립지만 10개 지역이다. 주민 공원은 화학 폐기물을 담은 수백 개의 드럼통이 보관되었던 해군의 옛 병기창이었다. 


앞서 지하수 오염 등 보도들이 계속 나오면서 주민 불안을 높였다. 지난 2009년에는 토양 증발 방식으로 고도로 농축된 암 유발 화학물질이 대기 샘플에서 검출됐다는 해군 발표가 있었으며, 2017년에는 일부 상수도 지역에서 라듐이 검출되는 등 환경 오염에 대한 보도가 이어졌다. 옛 그루먼사의 부지를 중심으로 토양과 지하수 오염도가 본격 조사되면서, 그간의 정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오염수가 서서히 동쪽과 남쪽으로 퍼져가고 있다 한다.

잊을만하면 이곳 오염 지대를 표기한 지도가 한 번씩 보도되고, 상수도원인 주요한 관정에 대한 조사 범위도 점점 확대되고 있다. 오염 지역 경계선 동쪽 바로 곁에 US 오픈 골프 대회도 열릴 만큼 시설 좋고 규모가 큰 베스페이지 주립 공원이, 오염수가 향하고 있는 남쪽 끝에는 대서양과 맞닿아 뉴욕 주민들의 여름 휴양지인 존스 비치 주립 공원이 자리하고 있어 주 차원의 대응이 절실했었다.
뉴욕 환경청이 발표한 오염 지역 지도 몇 년 전보다 더 광범위하게 동남쪽을 향해 위험 기준치를 초과한 오염수들이 퍼지고 있는 모습이다.
뉴욕 환경청이 발표한 오염 지역 지도몇 년 전보다 더 광범위하게 동남쪽을 향해 위험 기준치를 초과한 오염수들이 퍼지고 있는 모습이다. 뉴욕 환경청 DEC
 
필자의 자녀가 다니는 공립학교는 베스페이지 남쪽에 자리하고 있다. 같은 동네는 아니지만 오염수가 남쪽으로 흘러 퍼지면서 어느새 오염 지역권에 들어가고 말았다. 학군에서는 이미 수년 전부터 각 학교의 식수 시스템을 교체했고, 가정에서 물을 준비해 주길 권장하고 있으며, 매년 한두 차례씩 수질과 토양 오염 관련 보고를 통신문으로 받고 있다.  


원래 롱아일랜드는 지하 대수층의 맑고 맛있는 물로 유명했었다. 베스페이지 일대의 깊은 산림도 좋은 자연환경을 유지하는 데 한몫했다. 그런데 굴곡 없는 너른 터가 백 년 전부터 비행장과 항공산업에 이용되면서 훼손을 입기 시작한 것이다.

날아오르기 위해 자연을 뭉개기만 한 것이 아니라 독극물을 배어들게 해버렸다. 그리고 이제 부메랑이 되어 사람에게 돌아와 지역 주민을 병들게 하고 있다. 폐기물과 주민의 암 발병률에 대한 다각적인 연구는 2023 현재도 계속 진행 중이다.

지역 언론, 국회의원, 주민 위원회의 노력... 40년이 걸려서야 
 
베스페이지 워터타워와 인근에 있는 노스롭그루먼사 미국은 평지에 있는 동네에는 비상용 워터타워가 세워진 곳이 많다. 노스롭그루먼사에서도 보일 정도로 가까운 위치에 베스페이지 워터타워가 있다.
베스페이지 워터타워와 인근에 있는 노스롭그루먼사미국은 평지에 있는 동네에는 비상용 워터타워가 세워진 곳이 많다. 노스롭그루먼사에서도 보일 정도로 가까운 위치에 베스페이지 워터타워가 있다. 장소영

지난 2020년이 되어서야, 노스롭 그루먼사는 약 1억 440만 달러(한화 약 1385억 원)의 천연자원 손해 배상을 약속했다. 미 뉴욕 주는 해군과 노스롭 그루먼사와 오염원 정화를 위한 협정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2022년에는 주지사와 법무장관에 의해 오염원 봉쇄를 위한 법령이 정식 제출되고 노스롭과 해군은 정화 작업 이행 문서에 공식 서약했다. 1949년에 지하수에서 크롬이 발견된 이래 80년 가까이 흐른 뒤 이뤄진 일이다.

40여 년 동안 꾸준히 문제를 제기해온 지역 주민 단체와 끈질기게 보도해온 지역 언론(Newsday)의 힘이 컸고, 문제를 지역에서 주로 끌어올려 처리를 촉구해온 초당적 상하원 의원들의 노력, 지역 행정관의 실질적인 행정 능력도 더해졌다. 언론에 따라 평가가 다르긴 하지만 대기업과 해군을 상대로 노련하게 대처하고, 주 예산을 먼저 끌어와 그들을 자극한 전현직 주지사의 노력도 유효했다고 본다. 

생각해보라. 배상을 받고 협업을 이뤄내는 데 40년이 걸렸다. 수백 개의 화학 폐기물이 담긴 드럼통의 영향은 실로 대단했다. 40년이 지나도 흐르고, 공기 중으로 흩어지고, 제대로 해결이 안되고 있으니 말이다. 

일본의 오염수 방류 뒤 '일본인이 지구 우물에 독을 넣었다'라는 한 기사 제목이 와닿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앞으로 30년 내내 넣겠다고 한다.

폐기물 버려질 때는 태어나지도 않았던 아이인데

이곳에서는 '그때 버린 폐기물' 때문에 고등학교 옆 우물도 폐기하고, 주민들의 암 발병률도 올라가는 추세이고, 등교하는 아이에게 오늘 물병은 챙겼는지 묻는 것이 일상 습관인데, 앞으로 '30년 동안'이나 방류를 할 예정이라니. 뉴욕은 하나의 주이기 때문에 군과 기업을 상대로 책임을 묻고 배상을 받는 일이 가능하기라도 했는데, 태평양에 버린 오염수에 대한 책임은 누가 누구에게 어떻게 물을 수 있을까. 

부메랑은 반드시 돌아온다. 일본이 던졌지만, 일본에만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나이 든 세대가 던졌지만, 맞는 것은 어린 세대가 될 것이다. 그때가 되어서 일본은 습관처럼 숙여온 고개를 또 숙이고 유감 표명을 하면 그만일까. 

우리 아이는 베스페이지에 살지 않는다. 폐기물이 버려질 때는 태어나지도 않았었다. 그런데 단지 이웃 동네에 산다는 이유로 오염수가 학교 아래로 흐르게 되었고, 지금은 매일 그 학교에 가고 있다. 물병을 매일 꼭꼭 챙겨 들고서 말이다.

인간과 달리 태평양 해양 생물들은 물병을 챙길 수도, 이사를 할 수도 없다. 물병을 챙길 수도, 이사를 할 수도 없는 지경이 인간에게도 곧 닥칠 것만 같다. 방류되는 오염수보다 더 빠르고 강한 각국의 해법과 의지가 속히 모이길 바라본다. 
#오염수 방류 #후쿠시마 #롱아일랜드 #폐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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