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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OO의 진한 국물 맛, 하동정씨만의 신선로 특색 불렀다

[부엌에 숨겨 둔 인생레시피 : 인생그릇] 정소혜 여사의 신선로

등록 2023.08.28 15:07수정 2023.08.28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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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에는 역사가 숨어 있다. 그래서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음식은 그 가문의 역사가 되기도 한다. 어머니와 할머니, 윗대에서부터 전해 내려오는 고유한 음식은 이제 우리에게 중요한 문화유산이 되었다. 전통음식은 계승해야 할 중요한 문화유산이지만 다음세대로 이어지는 전수 과정이 순조롭지만은 않다. 집안의 전통음식, 옛 음식을 전수해 줄 함양의 숨은 손맛을 찾아 그들의 요리이야기와 인생래시피를 들어본다.[기자말]
주암(舟巖)마을은 마을에서 본 산봉우리가 마치 배와 닮았고 동네에 바위가 많아 배 주(舟)자와 바위 암(巖)자를 따 이름 붙여진 마을이다. 고요한 숲속에 재잘거리는 새 소리와 시원한 계곡 소리만 들리는 이곳에는 예부터 사군자들이 은거하곤 했다.

그중 한 명이 일두 정여창(1450~1504)의 후손 죽헌 정태현(1858~1919)이다. 그는 벼슬을 마치고 주암마을로 낙향해 도숭산 남쪽에 숭양정을 세웠다. 숭양정은 장서를 구비하고 선생과 생도들이 모여 공부할 수 있도록 숙식까지 제공한 곳이다.


"도의란 사람이 다 같이 행해야 할 것이며 서적이란 천하의 공물이므로 한 사람이나 한 가정에서 사사로이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그의 큰 뜻이 담겨 있다.
   
눈과 입이 모두 즐거워지는 어머니의 음식
 
 하동정씨 종가음식 전수자 정소혜 여사
하동정씨 종가음식 전수자 정소혜 여사주간함양
  
하동정씨 18대손인 정소혜 여사는 숭양정에서 노닐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품고 살다, 2008년 60대 후반의 나이로 숭양정 터 앞에 집을 지어 귀촌했다. 인생의 대부분을 서울에서 지낸 그가 "내가 사랑하는 물 맑고 공기 좋은 고향에서 텃밭도 가꾸고 오가는 벗들에게 내가 만든 음식을 대접하고 싶다는 생각"에 함양에 다시 내려온 것이다.

6.25 전쟁이 일어나자 그는 함양에 내려와 지곡초등학교를 다녔고, 중학교 때 서울로 다시 올라가 중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졸업하고 쭉 서울에서 살았다. 노년에 함양에 돌아온 그는 그 시절 방학마다 숭양정을 찾았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고 말했다.

그가 어렴풋이 기억하는 숭양정은 어른들이 사랑채에 모여 회포를 풀 사이 그가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연못의 돌다리를 건너 정자에 앉아 경치를 즐기던 아름다운 공간이다.
   
 왼쪽부터 섭산삼 주안상 족편
왼쪽부터 섭산삼 주안상 족편주간함양
  
세월이 지나 연못과 돌다리만 남은 숭양정 터 앞 정소혜 여사가 누비는 공간에는 이곳저곳 그의 손때가 묻어 있다. 그는 "나이 들수록 무슨 일이든 만들어서 해야지 활력소가 생긴다"는 생각으로 비즈공예, 리본플라워, 뜨개질, 돌그림 그리기 등을 하며 옛 공간에 자신의 이야기를 채워갔다. 부엌의 조명도 그가 손수 비즈를 꿰어 만들었다.

숭양정 반빗간이라 칭한 그의 부엌은 부군의 사업으로 집에 찾아오는 손님들이 많아 어머니가 해주던 음식의 맛과 멋을 기억하며 하동정씨 종가음식을 자주 대접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어머니가 해주신 음식 중 가장 기억나는 음식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생각에 잠긴 그는 조부님을 위해 차려진 칠첩반상 위에 자글자글 끓여진 갈치조림과 숯불에 알맞게 구워진 송이 석쇠 구이가 떠오른다고 했다.

눈과 입이 모두 즐거워지는 어머니의 음식을 맛보며 그는 "미각이 그래서 참 중요하구나"를 느꼈다고 한다. 종가음식을 체득해온 그는 "정성을 다하라"는 어머니의 종가음식에 대한 말씀을 되새기며 귀중한 사람들을 집에 초대해 종가음식을 내놓아 환대한다.
 
주간함양
 
하동정씨 종가음식 잔칫상에 올라가는 신선로는 소 한 마리를 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고급스러운 재료가 들어가고 온 시간과 정성을 들여 만드는 요리 중 하나다.


정소혜 여사는 미국에 사는 딸의 지인이 한국에 왔을 때 어떤 음식을 대접할까 고민하다 신선로를 내놓았다. 그들이 신선로의 태와 맛에 감탄하는 모습을 보고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고 회상에 젖은 눈으로 말했다.

함양은 우시장이 열려 소고기 음식 문화가 발달해 하동정씨 종가음식에 신선로 외에도 소고기를 활용한 음식이 많다. 또 임금의 수라상에 오를 식재료의 주산지인 영남지역의 특산물이 거쳐가는 곳이기도 하여 훌륭한 식재료를 토대로 족편, 섭산삼 등의 음식이 탄생했다.


그가 칠순을 맞이하던 해, 그의 딸과 아들은 하동정씨 종가음식을 일상처럼 해온 정소혜 여사의 요리 솜씨를 담아 요리책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요리책을 발간하고, 하동정씨 종가음식 전수 교육에도 나서며 하동정씨 종가음식의 맛과 멋을 구현해온 정소혜 여사는 여전히 조상에게 누가 되지 않을까 염려된다며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태도를 보였다.

어머니에서부터 비롯된 하동정씨 종가음식에 대한 정소혜 여사의 태도는 숭양정에 담긴 죽헌 정태현의 베풂과 자신의 호를 한 마디의 좀이라 한 일두 정여창의 겸양을 떠올리게 한다. 그는 스스로를 자신의 이름 '소혜(小惠)'처럼 "작은 사람이라 용기도 없고 누가 밀면 밀려다니는 소심하고 미력한 사람"이라 칭한다. 하지만 종가음식에 담긴 현조의 삶과 정신을 기억하는 살아있는 전통인 그는 그 무엇보다도 큰 지혜를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신선로 레시피
 
 신선로
신선로주간함양
 
<재료>
양지머리 300g, 소고기 우둔살 200g, 소고기 다짐육 100g, 쇠간 100g, 천엽 50g, 멸치육수 7컵, 무 50g, 양파 1개, 대파 1/2대, 미나리 50g, 배 1/2개, 석이버섯 3개, 홍고추, 호두, 은행, 잣가루 1T, 계란 4개, 밀가루, 우유, 소금 조금

<양념장>
간장 4t. 다진 마늘 2t. 다진 파 2t, 맛술 1t, 매실청 1t, 참기름 1T, 깨소금 1t, 후추 약간
 

<순서>
1. 양지머리는 찬물에 담궈 핏물을 빼고 멸치육수에 무, 양파 1/2개, 대파를 넣고 푹 끓인 다음, 고기를 건져 얇게 썰고 간장 3t, 다진 마늘 1t, 잣가루, 참기름, 후추를 넣고 밑간을 해둔다. 멸치육수의 진한 국물맛은 하동정씨 집안 신선로의 특색이다.

2. 다짐육은 키친타월에 싸서 핏물을 빼고 간장 1t, 매실청 1t, 다진 마늘 1t, 다진 파, 깨소금, 후추를 넣고 잘 치댄 다음 은행알 크기만 하게 완자를 만든다. 완자 속에 잣 1알을 넣는다.

3. 우둔살은 전거리로 얇게 썰어 놓고, 배, 양파 1/2, 맛술 1t, 물 3T를 넣고 믹서에 갈아서 고기에 발라 10분 정도 둔 다음, 도마에 올려 핏물과 과일 찌꺼기를 제거하고 양념장을 골고루 발라 준다.

4. 쇠간은 전거리로 썬 다음 우유에 10분 정도 담가 냄새를 제거하고 양념장을 발라 준다.

5. 천엽은 소금으로 바락바락 치대어 깨끗이 씻은 뒤, 전을 구울 수 있는 크기로 준비한다.

6. 미나리는 줄기만 손질하여 5cm 길이로 잘라 이쑤시개에 끼워 소금을 뿌린 후 밀가루, 계란을 묻혀 구워 미나리초대를 만든다.

7. 완자, 우둔살, 쇠간, 천엽은 모두 밀가루와 계란을 묻혀 팬에 부친다.

8. 석이버섯은 따뜻한 물에 불린 다음 손으로 비벼 안쪽의 불순물을 깨끗이 손질하여 채썬다. 이때 석이버섯을 가지와 같은 검은색 야채로 대체할 수 있다.

9. 계란은 황, 백으로 나누고, 흰색 지단과 노란색 지단을 각각 부친다.

10. 호두는 껍질의 쓴맛을 없애기 위해 뜨거운 물에 2~3초 넣었다가 빼 껍질을 벗기고, 은행은 기름에 살짝 볶아 껍질을 분리한다.

11. 신선로 그릇에 밑간을 해둔 양지머리를 깔고, 그 위에 각색 전을 담고, 각색 지단과 완자, 호두, 잣을 올려 장식을 한 후 상에 올리기 직전에 뜨거운 육수를 붓고 숯불을 담아낸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함양뉴스 (주간함양)에도 실렸습니다.
#신선로 #레시피 #정소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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