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열린 제78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2023.8.15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대통령의 발언은 시험 출제자에게 상당한 압박이 된다. 사실상 출제 지침으로 작용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분란의 소지가 있는 내용이라면 애초 피하는 게 상책이다. '공산 전체주의'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한 마당에, 일제강점기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을 평가하는 내용은 배제하는 게 안전하다. 주제야 차고도 넘치는 게 한국사 시험이니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일선 교사에게도 은연중에 수업 지침으로 작용한다. 문제는 현행 한국사 교과서는 대통령의 역사 인식과 아예 딴판이어서 더욱 부담스럽다는 점이다. 일제강점기 당시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에 대해 비교적 상세히 서술되어있는 데다, 해방 후 월북한 인물들의 행적까지 정리해 놓고 있다. 기성세대가 자녀의 교과서를 읽어본다면 상전벽해의 느낌이 들 것이다.
현 정부에서 한국사 교과서를 새로 쓰게 된다면, 가장 먼저 일제강점기를 다룬 대단원부터 손보게 될 게 분명하다. 홍범도 장군마저 대놓고 욕보이는 판국에 교과서 속 다른 사회주의자들의 면면이 멀쩡할 리 없다. 대충 추려봐도 족히 십수 명은 된다. 독립운동을 위한 방편으로 삼은 사회주의 이념이 100년 뒤 그들의 업적을 폄훼하는 족쇄가 된 현실이 착잡하기만 하다.
현 정부와 '코드' 안 맞는 독립운동가
당장 연해주에서 고려 공산당의 대표로 활동한 이동휘부터 내쳐질 듯하다. 열혈 독립운동가로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무총리에 추대된 그는 뼛속 깊이 사회주의자였다. 임시정부의 초대 국무총리였다는 점보다 독립운동 방식을 두고 이승만 초대 대통령과 사사건건 대립한 사회주의자라는 점에서 '배제 0순위'가 될 게 불 보듯 환하다.
학생 신분으로 3.1 운동에 참여했다가 중국으로 망명한 뒤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하고 조선의용대 지도자가 된 윤세주도 지워져야 할 것이다. 의열단을 세운 김원봉의 고향 후배이자 핵심 측근으로 중국에서 항일 영웅으로 추앙되는 인물이니 무탈할 수 없다. 기생으로 3.1 운동에 참여한 뒤 사회주의자가 된 여성 독립운동가 정칠성의 업적도 현 정부의 코드에 맞지 않는다.
봉오동 전투 당시 홍범도의 대한독립군과 함께 일본군을 격파한 군무도독부의 최진동도 교과서에서 지워져야 한다. 그는 봉오동 전투 이후에도 줄곧 사회주의 러시아 혁명군과 손잡고 일본군과 맞서 싸운 대표적인 '빨치산'이다. 현 정부의 기준대로라면, 3.1 운동 이후 만주나 연해주에서 무장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모두 현 정부엔 눈엣가시 같은 존재일 수밖에 없다.
해방 후 월북한 김원봉이 드리운 그늘이라고 해야 할까. 의열단의 서술 비중도 덩달아 축소될 듯하다. 나아가 일제 식민 통치기관의 파괴와 친일파 암살 등 민중의 직접 혁명을 도모한 의열단은 이현령비현령으로 사회주의에 엮일 가능성이 있다. 의열단원을 주축으로 김원봉이 창립한 조선의용대는 해방 후 북한 공산군으로 편입된 조선의용군의 주력이 된다.
김상옥, 나석주, 김익상, 박재혁, 김지섭 등 혈혈단신 총 한 자루, 폭탄 하나로 일제에 맞선 숱한 의열단원들이 그나마 그들의 지도자인 김원봉처럼 내쳐지지 않고 건국훈장을 받을 수 있었던 건, 해방을 보지 못하고 순국한 '덕분'이다. 만약 그들이 살아서 해방을 맞았다면, 김원봉을 따라 월북했을 게 틀림없다. '빨갱이'로 낙인찍혀 치도곤당할 뻔한 운명이었던 거다.
우리가 저항 시인으로만 기억하고 있는 이육사도 의열단원이었다. 그 역시 해방을 한 해 앞둔 1944년에 순국했으니, 천만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오매불망 꿈에 그리던 해방된 조국이 남북 분단으로 치달은 참담한 현실을 보았다면, 그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의열단의 행동 강령인 <조선혁명선언>을 작성한 신채호 역시 살아서 해방을 맞았다면 '큰일 날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