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게 완벽했던 어머니에게 배운 '이 맛'

[부엌에 숨겨 둔 인생레시피③] 달성서씨 29세손 서정숙 여사

등록 2023.09.11 13:38수정 2023.09.11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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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에는 역사가 숨어 있다. 그래서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음식은 그 가문의 역사가 되기도 한다. 어머니와 할머니, 윗대에서부터 전해 내려오는 고유한 음식은 이제 우리에게 중요한 문화유산이 되었다. 전통음식은 계승해야 할 중요한 문화유산이지만 다음세대로 이어지는 전수 과정이 순조롭지만은 않다. 집안의 전통음식, 옛 음식을 전수해 줄 함양의 숨은 손맛을 찾아 그들의 요리이야기와 인생래시피를 들어본다.[기자말]
 팥양갱
팥양갱주간함양

한복을 입고 앞치마를 정갈하게 한 아낙네가 참죽나무의 여린 잎인 기다란 가죽나물을 삶아 찹쌀을 묻혀 빨랫줄에 주렁주렁 걸고 있다. 남편, 세 아들, 그리고 딸을 먹일 밥상에 올릴 밑반찬으로 가죽자반을 만들기 위해서다.

햇볕에 말린 가죽자반, 씀바귀 김치 등 푸짐한 식사를 마친 후 어머니와 딸은 여느 가족처럼 장난스럽게 설거지를 서로에게 미루며 "정지에 네가 들어가라", "엄마 나 싫어요" 실랑이를 벌인다. 경남 함양군 유림면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함양에 거처하고 있는 함양 토박이인 서정숙 여사가 떠올린 어머니와의 추억 한 장면이다.


요리를 정식으로 배운 적 한번 없어도 웬만한 음식은 뚝딱해내는 그는 어릴 적 설거지를 하러 정지에 들어가라는 어머니의 말이 미웠다고 했다. 정지란 취사와 난방을 겸하는 공간으로 경상·전라·강원 지역의 부엌에 대한 방언이다. 그의 어머니는 무더운 여름에는 정지 밖에서 솥을 내걸어 요리했다. 겨울에는 정지의 아궁이에 장작을 넣어 불을 때 온돌을 덥히고 그렇게 탄 숯으로 부뚜막 위에 솥을 올려 뜨끈한 음식을 만들곤 했다.

완벽한 어머니가 해준 맛, 잊지 못해...
 
 달성서씨 29세손 서정숙 여사
달성서씨 29세손 서정숙 여사주간함양
 

사시사철 한복을 입어 정갈한 차림새를 유지하고 빨래, 바느질 등 살림살이에도 능했던 그의 어머니는 맵시, 말씨, 솜씨라는 부녀자의 삼덕을 칭하는 삼씨가 좋은 며느리로 소문나 있었다. 어머니의 시어머니조차 "숙이는 우리 며느리 신 벗은 데도 못 따라 간다"할 정도의 만능 주부였다.

서정숙 여사는 모든 것이 완벽한 어머니의 등쌀에 설거지부터 시작해 요리를 도왔다. 그는 "어깨너머로 배운 요리 솜씨가 시집와서 살림 사는 데 큰 도움이 되어 어머니께 감사하다"고 전했다.

어머니가 해준 음식 중에서도 양갱이 기억나 남편과 두 아들에게 간식으로 많이 해주었다. 연탄도 없던 시절 그의 어머니는 오일장에서 사온 나무로 불을 때 팥을 삶고 주걱으로 손수 저어가며 앙금을 만들어 팥양갱을 자식들에게 건넸다. 어머니의 양갱을 처음 먹은 순간에 대해 묻자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한 맑은 눈빛으로 양갱의 맛이 "달달한 게 마치 입에 살살 녹아 말 그대로 꿀맛"이었다고 답했다.


그는 이 양갱 맛을 기억하며 술보다 군것질을 좋아하는 남편에게 건강에 좋은 호두를 넣어 양갱을 만들어줬다. 남편은 팥양갱을 맛보며 "당신 솜씨 참 좋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2018년에 세상을 떠난 남편을 떠올리던 그는 "말도 없고 무뚝뚝한 남편에게 이 말보다 더한 칭찬은 없다"고 덧붙였다.

현재 학당마을에 사는 서정숙 여사는 교직에 계신 부친이 근무지를 옮길 때마다 수동면, 안의면 등 함양 이곳저곳에서 터를 옮겨 왔다. 그러다 함양읍에 사는 부군을 만나 함양읍 교산리의 학당마을에 정착했다. 가족과의 추억이 함양 곳곳에 서려 있는 탓에 "자기 고향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나요?"라 되물을 정도로 남다른 애향심을 가졌다. 함양주민자치회, 함양농협 고향을사랑하는주부들의모임(이하 고주모) 등 지역사회를 위한 활동도 활발히 했다.


특히 고주모에서는 2014년부터 2019년까지 6년간 회장으로 요리 솜씨를 발휘해 함양군소재 군부대 장병들을 위한 사랑의 동지 맞이 팥죽 나눔 행사, 결혼이민여성과 한가위 송편만들기 행사, 불우이웃을 위한 밑반찬 만들어주기 활동 등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고주모를 통해 NH농협이 주관하는 2017년 이민여성 농업교육 워크숍에 이민여성의 멘토로 참가했다. 두 아들, 남편에게 해주었던 양갱과 함양에서 나고 자라며 맛본 농산물들에 대한 경험을 담아 오미자, 산머루, 단호박, 연잎, 산삼을 가공해 오색양갱을 출품해 대상을 받았다. 상을 받은 순간 멘티인 결혼이민여성과 함께 너무나도 기뻐 소리를 질렀다는 그는 그때 탄 상금을 함양 불우이웃 돕기 후원금으로 냈다.

자신의 삶 전부라고도 할 수 있는 함양에서 언제나 가족, 지역 이웃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어온 서정숙 여사는 타인과 음식을 나누는 즐거움에 대해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내 새끼 입에 밥 들어가는 게 제일 즐거움이라고 했잖아요. 그러니까 꼭 내 새끼가 아니라도 다른 분들한테 내가 만드는 음식이 맛있다라고 하고 다소 조금 부족하고 맛이 없더라도 맛있게 드셔주시면 그런 즐거움이 또 어디 있을까요? 타인들이 드셔주시는 그게 아마 매력이고 제 보람이고 즐거움인 것 같습니다." 
 
 오색양갱
오색양갱주간함양

 오색양갱 레시피

 <재료>
한천 30g, 물 4컵(800ml), 아카시아꿀, 산양삼 20뿌리, 연잎가루 2t, 삶은 단호박 1/2개+꿀 1T, 오미자즙 1T, 산머루즙 1/4컵(50ml)

<순서>
1. 한천을 씻은 뒤, 냄비에 물과 한천을 넣고 약 10분 동안 실온에서 불린다.
2. 냄비에 물과 불린 한천을 넣고, 중불에 올려 주걱으로 저어가며 5분간 끓여 용액이 투명해지면 냄비를 불에서 내린다.
3. 한천을 끓이는 동안 연잎가루(2t)를 물(1T)에 개어 놓는다. 단호박은 으깨서 체에 걸러둔다.
4. 한천을 녹인 물과 재료들을 각각 섞어 양갱 반죽이 식기 전에 몰드에 부어 굳힌다. (실온에 식힌 후 2-30분 정도 냉장고에 넣어 굳힌다)

1) 산양삼 양갱: 한천을 녹인 물 2국자, 꿀 2T (양갱 반죽에 잠기게끔 몰드 1칸에 산양삼 뿌리 1개씩 올린다.)
2) 단호박 양갱: 한천을 녹인 물 2국자, 삶은 단호박 1/2개, 꿀 1T
3) 오미자 양갱: 한천을 녹인 물 2국자, 오미자즙 2T
4) 산머루 양갱: 한천을 녹인 물 2국자, 산머루즙 1/4컵
5) 연잎 양갱: 한천을 녹인 물 2국자, 물에 개어둔 연잎가루 4t, 꿀 2T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함양뉴스에도 실렸습니다.
#부엌에 숨겨 둔 인생레시피 : 인생그릇(3) #서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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