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성서씨 29세손 서정숙 여사
주간함양
사시사철 한복을 입어 정갈한 차림새를 유지하고 빨래, 바느질 등 살림살이에도 능했던 그의 어머니는 맵시, 말씨, 솜씨라는 부녀자의 삼덕을 칭하는 삼씨가 좋은 며느리로 소문나 있었다. 어머니의 시어머니조차 "숙이는 우리 며느리 신 벗은 데도 못 따라 간다"할 정도의 만능 주부였다.
서정숙 여사는 모든 것이 완벽한 어머니의 등쌀에 설거지부터 시작해 요리를 도왔다. 그는 "어깨너머로 배운 요리 솜씨가 시집와서 살림 사는 데 큰 도움이 되어 어머니께 감사하다"고 전했다.
어머니가 해준 음식 중에서도 양갱이 기억나 남편과 두 아들에게 간식으로 많이 해주었다. 연탄도 없던 시절 그의 어머니는 오일장에서 사온 나무로 불을 때 팥을 삶고 주걱으로 손수 저어가며 앙금을 만들어 팥양갱을 자식들에게 건넸다. 어머니의 양갱을 처음 먹은 순간에 대해 묻자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한 맑은 눈빛으로 양갱의 맛이 "달달한 게 마치 입에 살살 녹아 말 그대로 꿀맛"이었다고 답했다.
그는 이 양갱 맛을 기억하며 술보다 군것질을 좋아하는 남편에게 건강에 좋은 호두를 넣어 양갱을 만들어줬다. 남편은 팥양갱을 맛보며 "당신 솜씨 참 좋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2018년에 세상을 떠난 남편을 떠올리던 그는 "말도 없고 무뚝뚝한 남편에게 이 말보다 더한 칭찬은 없다"고 덧붙였다.
현재 학당마을에 사는 서정숙 여사는 교직에 계신 부친이 근무지를 옮길 때마다 수동면, 안의면 등 함양 이곳저곳에서 터를 옮겨 왔다. 그러다 함양읍에 사는 부군을 만나 함양읍 교산리의 학당마을에 정착했다. 가족과의 추억이 함양 곳곳에 서려 있는 탓에 "자기 고향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나요?"라 되물을 정도로 남다른 애향심을 가졌다. 함양주민자치회, 함양농협 고향을사랑하는주부들의모임(이하 고주모) 등 지역사회를 위한 활동도 활발히 했다.
특히 고주모에서는 2014년부터 2019년까지 6년간 회장으로 요리 솜씨를 발휘해 함양군소재 군부대 장병들을 위한 사랑의 동지 맞이 팥죽 나눔 행사, 결혼이민여성과 한가위 송편만들기 행사, 불우이웃을 위한 밑반찬 만들어주기 활동 등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고주모를 통해 NH농협이 주관하는 2017년 이민여성 농업교육 워크숍에 이민여성의 멘토로 참가했다. 두 아들, 남편에게 해주었던 양갱과 함양에서 나고 자라며 맛본 농산물들에 대한 경험을 담아 오미자, 산머루, 단호박, 연잎, 산삼을 가공해 오색양갱을 출품해 대상을 받았다. 상을 받은 순간 멘티인 결혼이민여성과 함께 너무나도 기뻐 소리를 질렀다는 그는 그때 탄 상금을 함양 불우이웃 돕기 후원금으로 냈다.
자신의 삶 전부라고도 할 수 있는 함양에서 언제나 가족, 지역 이웃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어온 서정숙 여사는 타인과 음식을 나누는 즐거움에 대해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내 새끼 입에 밥 들어가는 게 제일 즐거움이라고 했잖아요. 그러니까 꼭 내 새끼가 아니라도 다른 분들한테 내가 만드는 음식이 맛있다라고 하고 다소 조금 부족하고 맛이 없더라도 맛있게 드셔주시면 그런 즐거움이 또 어디 있을까요? 타인들이 드셔주시는 그게 아마 매력이고 제 보람이고 즐거움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