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두막은 산 중턱에 있었는데 귀가할 때가 가장 힘들었다.
유신준
매일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야 하는게 지겨웠다. 제발 한번이라도 좋으니 자전거 좀 타고 올라가보자고 전동 자전거를 샀다. 페달을 밟아야 작동하는 어시스턴트 식이었다. 처음 한동안은 신세계였는데 배터리가 얼마 못갔다. 어차피 내려서 끌고 올라가야 하는 팔자였다.
한여름에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다 보면 온 몸이 땀으로 젖었다. 장점도 있었다. 오두막 계곡물을 한 바가지 끼얹고 나면 바로 천국이라는 거. 게다가 싱크대 아래에는 천엔짜리 사케 댓병이 상시 대기중이었다. 샤워 후 목에 수건을 걸치고 한 잔 마시면 무릉도원이 따로 없었다. 아마 그 바람에 제법 오랜 세월 동안 공포의 오르막을 버틸 수 있었을 것이다. 조금만 더 올라가면 시원한 계곡물과 사케 댓병이 기다리고 있다면서.
오두막을 겪어 좋게 보이는 것
오두막에 비하면 이곳 쿠사노의 작은 경사들은 거의 평지에 가깝다. 처음부터 쿠사노에 왔더라면 좋은 점을 몰랐을 것이다. 오두막의 어려움을 경험하고 나니 이곳이 좋다는 걸 잘 알게 됐다. 역시 젊었을 때 고생은 사서라도 해봐야 한다. 좋은 점은 또 있다. 도서관이 가깝다는 거다.
다누시마루 시절 도서관은 왕복 1시간 걸렸는데 이곳은 30분이면 된다. 도서관에는 정원 관련 책이 서가를 2단이나 차지하고 있다. 이 사람들의 정원에 대한 관심을 말해주는 엄청난 양이다. 정원공부에 축복받은 환경이다. 다누시마루 도서관에 비하면 장서 수가 좀 적은 것 같긴 하다. 내가 도서관 책을 다 읽을 것도 아닌데 뭐 어떤가.
할배가 받아들인 월세 1만엔은 상징적 금액이다. 그냥 집을 내주는 건 쓰는 쪽이나 내주는 쪽이나 꺼림칙하니 명목상 주고 받는 돈이다. 1만엔은 내가 목욕탕을 적극적으로 거절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말도 안 되는 금액으로 2층을 통째로 쓰고 있는데 어떻게 그 성의마저 거절한단 말인가? 나와 할배는 그렇게 주거니 받거니 잘 살아가고 있다.
할배는 한국 드라마 열혈 팬이다. 아침마다 방영되는 한국드라마는 다른 일을 제쳐놓고 반드시 본다. 드라마가 방영되는 오전 8시부터 10시까지 그에게 중요한 시간이다. 아침을 먹고 준비하고 있다가 한국 드라마를 보고나서 하루를 시작한다.
일본 드라마는 왜 안보느냐고 물었더니 스토리가 너무 뻔하게 정해져 있단다. 광고도 많아서 자기가 광고를 보고 있는건지 드라마를 보고 있는 건지 헷갈릴 정도란다. 나에 대한 할배의 우호적 태도는 어쩌면 한국 드라마 덕분인지도 모른다.
할배는 흘러간 여가수 미야코 하루미를 좋아한다. 젊은 시절부터 팬이라 했다. 놀러가 보면 항상 그녀 노래를 틀어놓고 있다.
요즘 젊은 것들은 노래를 못해. 혼자 나와서는 노래가 안 되니 떼거리로 나와서 알아듣지도 못할 소리로 악을 쓰는 거야. 그렇게 해야 누가 부르는지도 알 수 없잖아. 노래 못하는 걸 감추느라고 그러는 거라고. 노래를 못하니 오로지 화장과 옷차림으로만 승부하려 하지.
할배의 걸그룹 비평이다. 분명 미야코 하루미가 깊게 영향을 끼쳤을 터다. 묘하게 설득되지 않나?(나만 그런가?)
- 나의 다정한 이웃 이노우에 할배 2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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