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9일 오후 부산시 동구 초량동 정발장군 동상 앞 항일거리에서 일본 오염수 방류와 흔들리는 민주주의를 우려하는 월요시국기도회를 열고 있다.
김유철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아래 천주교 사제단)이 9일 부산을 시작으로 전국 순회 월요시국기도회를 다시 시작했다. 이는 지난 8월 14일 서울 세종대로에 열린 미사에 이어 두 달여 만이다.
주최 측 추산 8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시국기도회가 열린 공간은 정발장군 동상이 있는 항일거리다. 사제단은 임진왜란 당시 왜군의 공격에 맞서 순국한 장군의 동상과 일제강제징용노동자상, 평화의소녀상이 자리 잡은 곳을 기도회 재개 장소로 선택했다.
그동안 17차에 걸친 기도회에서 '친일매국 검찰독재 윤석열 퇴진, 주권회복'을 외쳤던 사제단은 이번엔 '오염된 바다, 흔들리는 민주주의를 우려한다'라는 제목을 내걸었다. 현장의 가장 앞에는 '주님의 궤를 메고 백성 앞에 서서 나아가라'라고 적힌 구절이 적혔다.
강론에 나선 김현영 신부는 "압수수색과 여론호도, 주변 강대국 사이에서 그나마 지키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의 자존심이 사라지는 나날 속에서 더 이상 숨을 쉴 수가 없다. 그래서 사제들이, 수도자들이, 신앙인들이 오늘 이렇게 다시 광장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라고 말했다.
사제단의 공개 성명엔 일본의 오염수 방류와 윤석열 정부의 대응에 대한 비판이 담겼다. "회복불능의 영구 오염지대가 될 바다"를 걱정한 사제단은 동시에 "또 어찌하여 일본의 핵 오염수 해양투기를 정당화하고 지원하는 체제가 이 땅에 등장하게 되었는지 어이가 없다"라고 탄식을 토해냈다.
민주주의 위기에 대해선 "더는 기다리고 있을 여유가 없다"라고 행동을 당부했다. 종교인을 향해서도 "정치적 무관심, 무감각, 냉소주의의 형태로 가짜 민주주의의 메커니즘에 공모하고 공조해 온 잘못을 반성해야 한다"라며 각성을 촉구했다.
부산에서 출발한 사제단의 기도회는 오는 16일 서울시청역 숭례문 앞 도로, 23일 수원교구 안양중앙성당으로 이어진다. 30일 서울광장 서편 도로에서 열리는 기도회는 이태원 참사 1주기 미사와 함께 진행된다.
다음은 시국기도회에서 사제단이 발표한 성명 전문이다.
<오염된 바다, 흔들리는 민주주의
"주님의 궤를 메고 백성 앞에 서서 나아가라"(여호 3,6)>
1. 지난 8월 14일 서울 세종대로에서 월요시국기도회를 폐막하자마자 일본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7등급 핵사고 재난이 발생했던 후쿠시마의 130만t 방사능 폐수를 바다로 흘려보내기 시작했다. 장차 바다는 회복불능의 영구 오염지대로 남을 전망이다. 평생토록 <녹색평론> 하나를 키워서 죽는 날까지 "변화냐 파멸이냐?"(김종철) 하고 울부짖던 예언자는 지금 어떤 심정일까. 그런데 믿기 어려운 또 다른 일이 벌어졌다. 하나뿐인 일본의 패륜적 범죄를 한국이 두둔하고 나선 것이다.
2. 어찌하여 일본의 핵 오염수 해양투기를 정당화하고 지원하는 체제가 이 땅에 등장하게 되었는지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다. 한편으로는 나라를 팔아서라도 탐욕을 채우려는 기득권 세력의 몰염치에 놀라고, 다른 한편으로 자주독립과 민족화해, 그리고 민주주의를 위해 기꺼이 살을 베어 주고 피를 쏟아 주신 분들의 희생이 떠올라 가슴이 미어진다. 하지만 어쩌랴. 혁명이란 오랜 시간을 두고 수없는 반동을 극복해 가며 아주 느리게 이뤄내는 성과인 것을. 민주주의는 끊임없이 방어하고 보호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무너지고 마는 특이체질인 것을. 자포자기나 낙심천만은 금물이다. 발악發惡에는 발선發善으로.
3. 사람의 도리는 고사하고 최소한의 정리情理, 의리조차 배우지 못한 허풍선. 오로지 제 뱃속을 세상 전부로 아는 허랑방탕 전직 검사의 집권이 재앙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진정한 민주주의를 가로막는 체제의 배후는 따로 있다. 그깟 '윤모' 하나를 치운다고 해도 민주주의가 멀쩡해지지 않는다. 근본적으로 우리가 신봉해 온 민주주의가 가짜 민주주의라는 점을 분명히 말해두어야 하겠다. 선거대의제가 곧 민주주의라고 믿었던 우리는 너무나 순진하고 어리석었다. 민중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다스릴 때 비로소 참된 민주주의다. 어쩌면 윤석열의 공로는 민중의 이름으로 출현한 모든 대의 정부가 민중의 이해와 정반대로 작동해 온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 보여 준 점일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언론개혁, 검찰개혁을 열망하며 국회의원을 뽑아 놔도 결국은 정치 엘리트와 금권세력이 지배하는 과두적 체제의 지속이라는 점 또한 너무나 분명해졌다. 민주주의를 가장하고 참칭하여 권력 게임을 주도하는 자들에게 속지 말자. 양처럼 순하되 뱀처럼 슬기로워야 한다는 말씀을 따라 누구나 대등한 자격으로 통치의 권리와 책임을 나누도록 하자. 다른 한편으로 오늘날 우리의 삶이 몹시 불안한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은 너와 내가 어떤 형태로든 가담하고 용납한 결과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특히 종교인들부터 정치적 무관심, 무감각, 냉소주의의 형태로 가짜 민주주의의 메커니즘에 공모하고 공조해 온 잘못을 반성해야 한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프란치스코 교종이 그토록 강조해 마지않는 예언정신과 복음의 대범함으로부터 멀어졌다.
4. 모든 것이 망가지고 무너지는 현실을 볼 때 사회적으로나 생태적으로나 더는 기다리고 있을 여유가 없다. 일본 방사능 폐수에 오염된 한국 민주주의 시스템을 바로잡는 데 너도나도 힘을 합치자. 한국천주교회 신앙의 원형은 "흔한 사랑이 아니라 압도적인 사랑, 예측 가능한 혁명이 아니라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혁명"(김탁환)을 위해 살을 베어 주고 피를 쏟아 주는 행동이었음을 상기한다. 그리하여 사제인 우리들부터 삶의 밑바닥에 발을 딛고 거기서 새로운 민주주의를 길어 올리고자 한다.
5. 정발 장군을 마주 바라보는 이곳에서 부산시국기도회가 열렸다. 임진왜란 최초의 전투에서 정발 장군과 병사 전원이 싸우다 죽었다. 아니 죽을 때까지 싸웠다. 백성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낫 들고 달려들었고 기왓장 들어내서 던졌다. 전투가 벌어지면 그저 구경만 하는 일본 농민들과 달랐으니 모든 이가 결사항전의 주역이었다. 그분들의 뜨거운 숨결과 은혜를 느끼며 기운을 내자. 보름이면 기운 달이 차오르고, 찼던 달도 기운다. 우리는 갈수록 새로워지고 반생명, 반평화, 친일매국 검찰독재, 불법무도 윤석열의 퇴장은 나날이 가까워지고 있다.
2023년 10월 9일
애민군주 세종의 한글창제 정신을 기리며
부산 정발 장군 공원에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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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보성 기자입니다. kimbsv1@gmail.com/ kimbsv1@ohmynews.com 제보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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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사제단 다시 거리로 "윤석열 퇴장 가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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