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대봉의 북쪽송곳봉과 바다
안사을
여행의 막바지에 이르자 실수로 필름카메라를 놓고 온 사실이 어쩌면 우리에게 행운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가방과 삼각대 무게까지 더하면 7kg은 족히 무게가 더해졌을 것이고, 이러한 생고생 가운데 손이 많이 가는 필름사진을 제대로 찍을 수 있었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둘째 날 밤 우리는 결국 잘 곳을 찾지 못했다. 여정 상 산속으로 들어갈 수도 없었고 해변의 잘 곳은 언제 파도에 실려 갈 줄 모를 정도로 바다와 지척이었다. 저동과 도동은 주민과 관광객이 많아 공터나 정자에 텐트를 치는 것은 누가 봐도 민폐였다.
다 늦은 밤이 되어서야 근처 숙소에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기적처럼 이 황금연휴에 첫 번째 전화한 숙소에 방이 있었다. 게다가 정말 친절한 주인장이 우리를 맞아주셨다. 자전거와 달구지를 밖에 놓는 것이 불안하셨는지 옆집까지 동원해서 우리의 짐을 안전히 맡아주시기까지 했다. 추천받은 음식은 정말 맛집이었다.
모든 것은 우리에게 적절했다. 빗줄기도, 충전기도, 배터리도, 찾기 힘들었던 잠자리도 말이다. 여행은 그 순간의 행복함과 즐거움을 가져다 주면서 그와 동시에 미래에 간직하게 될 추억을 생산한다. 우리에게 다가온 고난을 즐겼으니 첫 번째 목적을 달성한 것이요, 길이 기억할 멋진 순간들이 남았으니 두 번째 목적을 달성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