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 국적 이주노동자 시란 씨.
충북인뉴스
인도 남해안에 위치한 열대 섬 국가 스리랑카, 천혜의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나라지만 그곳에도 생계를 걱정하는 노동자들은 있다. 그들은 자신의 노동을 팔아 돈을 벌기 위해 다른 나라를 찾는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우리나라에 입국한 스리랑카 노동자는 2만1000여 명에 이른다. 지난해 대비 28.5% 늘었다.
2003년 20대 초반 나이에 '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한국을 찾았던 시란씨(43)도 그 중 한 명이었다. 스리랑카에서 부모와 함께 작은 가게를 운영하던 그는 '한국에는 좋은 회사가 많다'는 말을 듣고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입국했다.
일단 터를 잡은 곳은 공단이 밀집해 있는 경기도 안산시였다. CNC파이브 만드는 공장, 자동차 부품 만드는 공장, 후라이팬·냄비 만드는 공장 등 그가 거쳐 간 곳은 5~6곳이 넘는다.
하지만 그래도 그때는 제법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시란씨는 회상한다. 몸은 고되었지만 안산에 있는 외국인노동자 인권단체의 도움으로 한국말도 배웠고, 친구도 사귀었으며, 돈도 제법 모았다고 했다. 잠시지만 스리랑카에 있는 부모에게 생활비를 드리는 기쁨도 느낄 수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 충북 진천으로 오면서 상황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키 190㎝, 몸무게 100㎏에 육박하던 건장했던 20대 청년은 이제 손가락 세 개는 감각이 없고, 한쪽 다리는 절단된 40대 장애인으로 변해 버렸다. 병원비 2000여 만 원을 걱정하는, 오도 가도 못하는 불법 외국인 노동자가 되었다.
그에겐 어떤 사연이 있었던 걸까?
민사소송서 승소했지만 단 한 푼의 보상금도 못 받아
벌써 10여 년 전 일이다. 몸서리쳐지던 그날의 사고를 시란씨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센서가 잘못되었는지 몰랐어요. 딩~ 소리가 나는데 손이 프레스에 눌려 있더라고요. 뼈가 밖으로 튀어나오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장갑으로 감았는데 피가 많이 났어요. 사장은 나를 바로 병원에 안 데리고 가고 앉아있으라고 했어요. 한참 있다가 병원에 갔어요."
그날 의사는 손가락 세 개가 절단될 수 있다고 했다. 아픔도 아픔이지만, 설움이 북받쳐 올라왔고 속절없이 눈물만 흘렀다. 우여곡절 끝에 접합수술은 성공했지만 그날 이후 세 손가락에는 감각이 없다. 실제 기자가 시란씨의 손을 만져보니 차갑고 싸늘한 느낌이다. 시란씨는 신경이 끊어져서 피가 안 도는 것이라고 했다.
인생의 내리막길은 그때부터였는지도 모른다. 사고는 산재로 인정받았지만 회사 사장을 상대로 한 민사소송은 승소를 했음에도 단 한 푼의 보상금도 받지 못했다. 두유 한 박스만을 건넨 채 사장은 폐업 신고를 하고 다른 지역으로 가버렸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아들 이름으로 회사를 다시 설립해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다.